30위권 건설사도 회사채 수요예측 ‘외면’
부동산 PF 우려 확대로 투자심리 꺾여
유동성 위기에 제2·제3의 태영건설 우려

서울 시내의 한 공사 현장. 사진=나영찬 기자
서울 시내의 한 공사 현장. 사진=나영찬 기자

[비즈월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규모가 2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건설사에 대한 투자심리가 꺾이며 유동성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시공능력평가 30위권 건설사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하면서 유동성이 부족한 중견사가 하나둘씩 쓰러지는 제2, 제3의 태영건설 사태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HL디앤아이한라(신용등급 BBB+)는 7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이 회사는 상반기 만기 도래가 시작될 차입금 상환을 위해 이번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다. 투자자로부터 선호도가 높은 1년물에 연 최대 8.5%의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PF 부실 우려가 확대되며 건설사에 대한 투자심리가 꺾였음을 방증한 것이다.

HL디앤아이한라는 한라비발디 브랜드를 보유한 시공능력평가 30위 중견 건설사다. 30위권 중견 건설사도 회사채 모집에서 싸늘한 반응만 맛본 상황에서 업계 유동성 위기가 곧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부동산 PF 대출 규모가 2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건설업계 유동성 위기 경고음을 키운다.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이 발표한 ‘부동산 PF 위기, 진단과 전망, 그리고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200조원으로 건설사 대량 부실 사태가 빚어졌던 2009~2010년 당시의 두 배 규모다.

금융위원회가 감독 권한을 가진 은행·증권 등이 보유한 PF 대출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134조3000억원이다. 여기에 새마을금고 등에서 실행된 PF 잔액과 유동화 금액을 모두 포함하면 실제 부동산 PF 규모는 202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건산연은 2010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며 미분양이 급격히 늘자 PF 연대보증을 제공했던 건설사들이 부실화됐고 저축은행의 동반 부실 사태가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PF 위기가 구조 측면에서 당시와 비슷하지만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위기가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와 달리 손실 흡수력이 낮은 제2금융권과 중소건설사들에 위험이 집중된 점도 우려로 꼽혔다.

현재 PF 부실을 겪고 있는 사업장은 중소·중견 건설사의 지방사업장이다. PF 만기가 연장됐다고 하는 곳이 주로 이런 사업장인데 시장은 이 중에서 적지 않은 곳이 부실화될 것으로 평가한다.

건산연 측은 PF 문제는 근본적 해결보다는 향후 부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사태의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며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주 건산연 연구위원은 “금융권의 손실 흡수력을 보강하고 건설사들에 대한 직접적인 유동성 지원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미분양 리츠와 임대 사업 활성화 등의 방식으로 시장에서 미분양이 해소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월드=나영찬 기자 / na@biz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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