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 말만 믿고 가입했다 '깜깜이 투자'
환급 거부·계약 취소 어려워 피해만 속출

[비즈월드] 금융시장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로 특히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로 지적받아온지 오래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금융상품의 실태를 점검하고, 관련 피해자와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도적 보완책 마련의 필요성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최근 고수익을 미끼로 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보험·금융 투자·저축성 상품 등 다양한 형태로 위장해 실제 구조와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이에 명백한 사기에 가까운 판매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위법 행위 등으로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는 설계사를 임명한 보험사·법인보험대리점(GA)이 약 70%에 달했다.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설계사 위촉 통제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 조사는 총 105개사(GA 73곳·보험사 32곳)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금감원은 GA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내부통제상의 취약점을 노출하는 사건·사고가 지속되고 있어 내부통제체계를 본격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GA는 보험업계의 가장 큰 판매 채널 중 하나다. GA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 신계약 443만 건과 손해보험 신계약 1429만 건이 대형 GA를 통해 체결됐다.
그러나 소비자 피해 역시 상당하다. 일례로 60대 주부 A씨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금융설계사의 권유로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 원금 보장은 물론 연 5% 이상 수익이 가능하다는 말에 계약했지만 이후 상품 구조를 들여다보니 해지 시 환급률이 50%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늦게 해지를 요구했지만 보험사는 설명은 충분히 이뤄졌고 계약자 서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환급을 거부했다.
아울러 '불완전판매'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리스크·수익 구조·수수료 등 주요 내용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고령층이나 금융 이해도가 낮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피해가 두드러진다.
한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지점 단위 실적 압박이 크다보니 일부 설계사들이 과장된 설명이나 상품 왜곡을 통해 계약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회사 차원의 윤리 교육과 관리 감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상품 구조는 복잡하고 불리한 조건이 많지만 설계사가 단순히 '이자 많이 준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제대로 된 설명이나 리스크 고지가 생략되면 사실상 소비자 입장에서는 '깜깜이 투자'가 되는 셈"이라며 "피해자 대부분은 당시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어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입증 책임을 금융사 측에 지우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 따로 구제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상품 관련 민원 중 불완전판매에 따른 분쟁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분쟁조정 신청 건수 대비 실제 구제율은 30% 안팎에 그쳤다.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소비자 책임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부터 불완전판매 근절을 위해 설계사의 설명의무 강화, 녹취 의무화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허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지난 2일 금융당국에서는 간담회를 통해 주요 GA 대표들과 만나 업계의 내부통제 강화와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이 간담회에서는 ▲올해 GA 검사·제재 중점 추진방향 ▲유사수신행위 등 위법행위 근절 ▲GA 내부통제 강화 ▲보험산업의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 ▲GA 제작 광고 건전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내부통제상의 취약점을 노출하는 사건·사고가 지속해 발생하고 있다"며 "성장한 만큼 환부는 도려내고 높아진 입지에 부합하는 내부통제 체계를 본격 구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금융당국은 최근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효성 있는 제도와 현장 감독 강화 없이는 유사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국회는 보험 사기 설계사들을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영구 퇴출하는 법안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며 "현행 보험업법상 사기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3년간 보험 설계사 등록이 제한되지만 그 이후에는 복귀가 가능해 재범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로 인한 배상책임 발생시 GA에 대한 보험회사의 구상권 행사를 강화도 진행될 전망이다. 아울러 시장규율 강화를 위하여 각 법인보험중개사별로 시행하던 공시를 보험중개사협회 홈페이지로 일원화하고 공시항목도 확대될 전망이다.
[비즈월드=최희우 기자 / chlheewoo@biz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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