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경영 분리 훼손 vs 회사 글로벌 성장 발판

15일 오전 주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대방동 소재 유한양행 본사 강당에서 '유한양행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가 개최됐다. 사진=유한양행
15일 오전 주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대방동 소재 유한양행 본사 강당에서 '유한양행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가 개최됐다. 사진=유한양행

[비즈월드] 유한양행이 28년 만에 회장직을 신설했다. 회장직 신설의 의미와 반발, 이후 움직임을 두고 업계 내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지난 15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제 2호 의안으로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회장·부회장 직급을 부활시켰고 그 자리에 외부 인사를 들여올 가능성을 열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이번 결정에 대해 '직제 유연화'라는 명분을 들었다. 글로벌 탑 50 제약사로 성장하는 데 있어 회사 규모를 키워야 하고, 외부 인재 영입 때 현재 직급보다 높은 직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회장·부회장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회사 측의 설명에 따르면 회장·부회장 신설 안건은 주총에서 약 95%의 찬성률을 보이며 통과했다. 다만 주총에 참석한 창업주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와 일부 유한양행 직원들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회장직 신설에 반대하는 이들은 해당 결정으로 창업주 정신인 '소유·경영의 분리'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와 가까웠던 연만희 고문이 지난 1996년 회장직을 내려놓은 이후로 해당 직을 비워둔 바 있다.

회장은 회사의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상법상 회사를 대표하는 '대표이사'와 구분되지만 회장이 대표이사를 겸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지 않는 사례는 최대주주·창업주 등 대표이사를 맡지 않고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표이사와 구분되는 회장직의 의미는 '상징성'과 '보상체계'에 있다. 기존 부사장·사장에서 부사장·사장·부회장·회장으로 직급이 확대되면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보상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공석인 회장직을 타사 대표이사에게 제안할 경우 승진 인사라는 점에서 설득하기도 쉽다. 

반대로 말하자면 회장이 상징성과 보상체계를 무기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 박사의 손녀인 유일링 이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결정 구조가 늘어나고 권력이 집중돼 유한양행의 창립 정신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조 대표나 현재 의장직을 맡고 있는 이정희 전 대표가 회장 자리를 탐내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당사자의 반박으로 일단락됐다. 해당 반박이 일찍이 나왔음에도 논란이 자꾸 커지는 이유는 유한양행이 지배구조 면에서 오랫동안 모범을 보여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1926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제약회사다. 사회공헌 확대와 건전한 지배구조 설립에 앞장선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주총에서 경영권 2세 상속을 버리고 전문경영인에게 이양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유 박사가 세상을 떠날 당시 개인 소유 주식 14만941주를 모두 기증한 사례는 전설처럼 구전되고 있다. 그 이후에도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연임을 6년으로 제한하는 등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이어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양쪽 주장이 아직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정희 의장이 장기 집권하는 등 이미 이전의 유한양행과 멀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말했다.

[비즈월드=최상규 기자 / csgwe@biz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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