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한국축구협회 회장(오른쪽)이 2012년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맞붙은 K리그 개막전에서 수원팀의 점퍼를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당시 정몽규 회장은 부산 아이파크팀의 구단주였다. 사진=커뮤니티 캡쳐
정몽규 HDC·한국축구협회 회장(오른쪽)이 2012년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맞붙은 K리그 개막전에서 수원팀의 점퍼를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당시 정몽규 회장은 부산 아이파크팀의 구단주였다. 사진=커뮤니티 캡쳐

[비즈월드] 자절(自切), '스스로 자(自)'자에 '끊을 절(切)' 자를 쓴다. 동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의 일부를 스스로 절단해 포식자로부터 눈을 돌리고 도망치는 행동을 말한다.

자절로 가장 유명한 동물은 도마뱀이다. 위기에 봉착하면 꼬리를 먹이로 내어주고 본체는 그사이에 도망간다. ‘꼬리 자르기’라는 말이 도마뱀의 자절로부터 탄생했다.

우리 일상에서는 게나 여치, 방아깨비 등을 잡았을 때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게는 집게, 여치나 방아깨비는 다리를 끊고 도망간다. 이 행위도 똑같이 자절이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자절, 꼬리 자르기를 한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중의 화살받이로 내던져 놓고 본인은 뒷전으로 사라지는 식이다. 소위 높으신 분들이 꼬리 자르기로 위기에서 벗어나 지체를 보존해 왔다.

지금은 정몽규 회장이 떠오른다. 최근 가장 크게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사건은 아시안컵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갈등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질됐고 이강인 선수는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선수를 보호해야 하고 제대로 된 감독을 선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몽규 회장과 대한축구협회는 대중의 돌팔매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선수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방패로 삼아 협회와 회장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말이다.

우리나라 축구팀에서 불화가 있었다고 해도 이를 방임한 무능한 감독과 무능한 감독을 데려온 협회에 책임이 분명히 있다. 협회는 뒷짐 지며 알아서 잘하라고 방관하다가 사건이 터지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불화설을 인정했다. 선수 보호라는 기본 철칙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에는 ‘기습 사면’ 사태로 축구스타 출신인 이영표·이동국 부회장과 이사진 전원이 물러났는데도 정몽규 회장만큼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당시 우루과이와 친선 A매치를 1시간 앞두고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 조치를 의결했는데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의 자절은 축구협회에서만 있던 일이 아니다. 기업경영에서도 무책임한 태도로 회사에 큰 손해를 일으켜 왔다.

지난 2019년 HDC현대산업개발은 무리하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뛰어들었다가 포기해 2500억원의 계약금만 날리게 생겼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계약금을 날리느니 소송을 통해 일부라도 되찾자는 심보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2022년 11월 패소했고 지난해 5월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2022년에는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했는데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도 없이 물러났고 HDC 회장 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몽규 회장의 HDC 그룹 지배권은 사고 이후 더 강화된 모양새다. 광주 사고 이후 HDC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분을 매입했고 정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엠엔큐투자파트너스가 HDC 보통주를 꾸준히 사들이며 정몽규의 지분을 높였기 때문이다.

정몽규 회장은 축구협회 수장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HDC 그룹 총수로도 경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축구협회에서도 HDC 그룹 경영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 식으로 회피해 왔다. 잘못을 인정해야 할 순간마다 사과는 피했지만 공은 취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수에서도 배우는 법이라고 하지만 실수도 인정해야 배우는 법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나아가야 성장할 수 있다. 실패나 실수 앞에서 인생의 태도가 늘 회피로만 그쳤다면 더 처참한 실패를 마주하게 된다.

처벌의 때가 다를 뿐 대가는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치르게 된다.

정몽규 회장의 자절(自切)이 좌절(挫折)로 그칠 날이 머지않았다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영찬 기자.
나영찬 기자.

[비즈월드=나영찬 기자 / na@biz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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