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월드] 줄도산, 한파, 경착륙, 위기…

지난해부터 건설업계 업황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건설사들이 각종 악재로 벼랑 끝 위기에 처했음에도 우리 정부는 때리기만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폐업한 건설사는 496개다. 지난해보다 70% 가까이 늘었다. 원가율·PF·고금리라는 삼중고가 업계를 불황의 늪에 빠뜨렸다.

원가율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주요 원자잿값(철근·시멘트 등)이 폭등하며 치솟았다. 건설사 원가율이 90%에 이르러 ‘지어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의 많은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원가율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가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심리를 꺾어버렸다. 고금리도 문제다. 대출받아서 집을 사야 하고 집을 지어야 하는 소비자와 시공사 모두 어렵게 됐다.

삼중고를 맞닥뜨린 건설사들은 쓰러져 가지만 정부는 건설사 때리기에 집중하며 사중고를 안겨준다.

특히 국토부의 간섭과 지적이 지나치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 많다. 원희룡 장관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실무자가 아니라 정치인’, ‘부동산 정치인’ 등 야박하다.

올해 건설업계 최대 사고였던 인천 검단 자이 붕괴 이후 원 장관은 GS건설 때리기에 몰두했다. “무관용 원칙 대응”, “관련법에서 가장 엄중한 조치” 등을 발언하며 10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추진한다.

잘못한 건설사는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정의다. 그러나 같은 잘못을 했는데 처벌의 강도가 다르다면 정의가 아니다. GS건설은 사고 이후 회사 전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사고가 발생한 현장 외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원 장관이 총괄 책임자로 있는 LH의 공공주택에서는 기둥 주변 보강 철근이 빠진 곳이 15개 단지가 나왔다는 것. 당시 원 장관은 “LH의 공공주택을 총괄하는 부처 책임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하고 완벽하게 보강 조치를 진행해 부실 무량판 구조가 한 군데도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GS건설의 검단 자이 1곳과 LH의 15곳은 무량판 구조로 시공됐고 보강 철근이 누락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단 사고가 발생했느냐 발생하지 않았느냐 차이다. 15곳이 부실한 LH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10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건설사 기강 잡기에 나선 원 장관이지만 기강 잡을 정의가 바로 세워져 있는지도 궁금하다. LH·HUG·한국도로공사 등 국토부 산하 기관 수장은 원 장관의 서울대 법대 동기나 윤석열 대통령 선거캠프 출신 등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져서다.

원팀 코리아를 꾸려서 하는 해외 건설 수주 활동도 건설사가 잘해서 사업을 딴 것이지 원팀 코리아이기 때문에 사업을 따낸 건 어폐가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원팀 코리아의 원이 ‘ONE’이 아니라 원희룡의 ‘원’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전세 사기, 양산 고속도로, 인천 검단 자이 붕괴 등 국민의 눈이 쏠리는 곳에서만 잘 보이는 점도 의문이다.

정부 대책도 가물어 버린 건설의 땅을 적시기에는 여우비로 그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PF 한도‧규모를 확대하는 대책은 무분별한 지원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용부는 안전 감독과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등 채찍질만 가하고 있다. 주택 착공 감소세가 계속되지만 피부에 와닿을 정책은 보이지 않아 향후 공급 대란 우려도 나온다.

나영찬 기자.
나영찬 기자.

우리나라에서 정책과 세금은 표심(票心)이 많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건설업계가 벼랑 끝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런 씁쓸한 행태가 계속된다면 건설산업의 후퇴는 정해진 미래일 것이다.

[비즈월드=나영찬 기자 / na@biz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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