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월드] 국내외로 불안한 정세 속에 리더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고금리·원자잿값 상승 등의 직격탄에 우리 경제가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임직원들의 수장인 CEO는 혜안을 갖고 회사의 미래를 열어나갈 사업과 업계에서의 포지션을 신중히 택해야 한다. 이에 비즈월드가 [CEO+]를 통해 각 산업의 최전선에서 우리 경제를 이끄는 CEO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현대카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현대카드

◆ 정태영 부회장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1960년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MIT) MBA를 수료하며 경영학 공부를 마쳤다.

정태영 부회장은 1985년 현대자동차그룹 초대 정몽구 회장의 차녀 정명이 씨와 결혼했다. 이후 현대종합상사,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등을 거쳐 현대카드에 몸을 담게 된다. 현대카드 대표직에는 2003년 10월 임명됐다.

대표 취임 당시 IT 도입을 포함한 경영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세간의 평이 나왔다. 현대 그룹 외국 지사를 오가며 글로벌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키운 점도 인정받았다. 

정태영 부회장은 지난해 급여 12억9000만원에 상여금 6억3500만원을 더해 총 19억4100만원을 수령했다. 20년 가까이 재직한 만큼 카드사 대표 연봉 중 가장 많다.

◆ 제로 시리즈·PLCC·애플페이 등 정태영 손길 닿지 않은 곳 없어

정태영 부회장이 취임하던 2003년은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가 터진 다음 해다. 신용카드 발급 경쟁 과열로 수많은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사태로 카드사들도 연쇄 작용으로 대규모 손해를 입었다. 현대카드는 그 해 6000억원대 순손실을 기록했다.

정 부회장은 대규모 적자를 오히려 성장 기회로 포착했다. 현대차그룹, 제네럴일렉트릭(GE)과 손잡아 자금조달과 대외신인도를 해결하고 대표 상품 '현대카드M'을 출시했다. 

현대카드는 매년 수백억원대 마케팅 비용을 들이는 등 광고에 진심을 다했다. 광고를 결정하는 날이면 정 부회장과 말단 직원, 임원이 한데 모여 공개토론을 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국내 최초로 지하철 사당역에 '스크린도어 광고'를 도입하고 미니스커트 입은 남자를 모델로 세우는 등 파격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정태영 부회장은 카드 디자인과 기업 로고, 브랜드 이미지 차별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국내 최초 투명카드와 미니카드, 명화를 담은 갤러리 카드, 알파벳 카드 등을 연달아 출시하며 디자인이 곧 기업 경쟁력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보통 금융 회사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혁신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정 부회장은 오너십이 있는 전문 경영인인 데다가 직접 스카우트와 구조조정 등 인사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본인만의 개성 넘치는 결정이 가능했다.

현대카드는 적자 회사에서 몇 년 후 수천억원대 영업이익을 보는 '업계 2위' 회사로 성장했다. 신용판매 점유율을 2001년 1.8%에서 2006년 12.5%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순위는 2~4위권에 정체됐지만 당기순이익과 신용판매금액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현대카드의 경영 철학이 가장 돋보이는 사업은 '슈퍼시리즈'다. 그중 슈퍼콘서트는 비욘세와 휘트니 휴스턴 등 최정상급 라인업으로 국내 해외 뮤지션 팬들을 만족시켰다. 슈퍼매치는 세계 최고 테니스·골프 선수를 초청해 스포츠 팬들에게 화제거리를 선사했다. 두 시리즈 모두 적자를 감행하며 펼치는 사업이지만 현대카드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카드 발급 증가, 마케팅 효과까지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2010년 이후에도 현대카드의 도전은 계속된다. 스티브잡스의 디자인 미학을 이어받은 '제로' 카드 시리즈 출시에 이어 디자인·건축 등 콘셉트를 살린 라이브러리(도서관)를 구축했다. 국내 최초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을 세로로 교체해 카드사 유행을 이끌었고 슈퍼콘서트 시리즈에 폴 매카트니, 콜드플레이 등 명성 높은 가수들을 초청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의 '챕터 2'를 선언하며 디지털 회사로서의 전환을 선포했다. 회사 내 AI·빅데이터 인력을 대폭 확충했고 국내 최초 카드 서비스·앱카드 통합 앱 출시와 함께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선보였다. 

디지털 전환 흐름에서 나온 전략 중 하나가 'PLCC(상업자표시신용카드) 출시'다. PLCC는 카드사와 제휴사가 협업해 특화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현대카드는 코스트코·스타벅스·배달의민족·대한항공·무신사 등 수많은 기업과 최초 PLCC 계약을 맺고 특화 카드를 출시해 흥행 가도를 달렸다. 흥행 비결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혜택과 기업 이미지에 맞는 디자인 채택이다. 정 부회장은 PLCC 디자인 선정 과정에서 직접 고객사들과 의견을 나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카드는 브랜드 중심 전략으로 고객들의 충성도를 키웠다. 지난해 기준 현대카드 PLCC 16종의 해지율은 평균 1.05%로 전체 카드사 해지율(평균 3%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대카드는 프리미엄 카드 회원 유치에 일가견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2005년 국내 최초 VIP카드 '블랙카드' 출시 이래로 퍼플·레드카드를 연달아 시장에 선보였다. 지난해에만 5만5000명의 프리미엄 회원을 확보하는 등 프리미엄 명가로서 이미지를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현대카드가 도입한 '애플 페이'는 갑작스러운 변덕이라기보다 그동안 현대카드와 정태영 부회장이 구축한 경영 철학이 담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애플을 공략해 현대카드의 혁신 이미지를 제고하고 신규 회원을 유치함과 동시에 독점 전략으로 마케팅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10만 건이 넘는 신규 카드 발급과 연체율 감소 등 실질 성과도 이뤘다. 

◆ 최악의 정보유출 사고·가족간 잇딴 訟事… 해외 사업 '좌초' 불행도

정태영 부회장은 지난 2011년 최악의 고객정보 유출 사고를 겪었다. 사장직을 맡은 현대캐피탈에서 두 달 가까이 개인정보와 신용등급 정보, 비밀번호까지 유출됐으며 피해 고객만 43만여명에 달한다. 정태영 부회장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금융 당국의 조치가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에 그쳐 논란이 일었다. 

정 부회장은 가족들과의 송사에 자주 휘말렸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 정은미씨는 정 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서울PMC(구 종로학원)의 회계장부 열람 문제를 두고 소송을 제기했다. 정 부회장이 부적절한 자금 집행, 법률 위반 등을 저질렀다 판단하고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1·2심 정은미씨 패소 판결을 파기하고 경위·목적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점을 들어 승소 판결을 했다.

아울러 정 부회장 3남매는 모친 조 모씨의 10억원 유산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장남이 배제된 상속이 부당하다며 10억원 중 2억원을 요구했다. 이 외에도 부모님 장례식 조문객 명단 열람 소송, 기수금 반환 소송 등 소모성 법적 다툼으로 남매간 깊은 감정의 골을 드러냈다.

정태영 부회장은 오랜 재직 기간만큼 많은 실패도 겪었다. 현대카드는 지난 2019년 베트남 소비자금융 지분 50%를 매입하는 계약에 실패해 해외 진출이 가로막혔다. 정태영식 경영문화를 적용한다고 자부했던 보험사 현대라이프는 누적적자 2000억원을 넘어서 결국 대만 푸본금융그룹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아울러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겠다며 미뤄온 IPO(기업공개) 계획은 중단됐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말 PLCC 파트너사들의 데이터 동맹 협업 회의 '도메인 갤럭시 카운슬'을 열고 협업 사례와 데이터 기술 발전 등을 공유했다. 사진=현대카드
현대카드는 지난해 말 PLCC 파트너사들의 데이터 동맹 협업 회의 '도메인 갤럭시 카운슬'을 열고 협업 사례와 데이터 기술 발전 등을 공유했다. 사진=현대카드

◆ 향후 사업 키워드 '데이터 동맹' 주목… 카드사 불황 속 건전성 극복 관건

현대카드는 브랜딩 활동을 필두로 한 독특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만큼 앞으로의 사업도 예측하기가 힘들다. 단기간 내 애플페이 출시와 같은 대형 이벤트보다는 최근 카드사 수익 감소에 대응해 건전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카드는 PLCC 기업 확대와 디지털화 가속화, 데이터 사업, 대체결제 지급수단 확충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데이터 사업'이다. 현대카드는 PLCC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도메인 갤럭시'라는 데이터 동맹을 결성한 바 있다. 지난해 도메인 갤럭시의 핵심 뼈대를 완성했다고 자부한 만큼 관련 플랫폼이나 혁신 서비스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다만 고금리로 인한 자금 조달 난항으로 카드사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와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은 숙제다. 카드사 수수료 감소, 실질 인구 감소 등 구조·행정과 얽힌 문제도 대처해야 한다. 정태영 부회장이 20여 년간의 숱한 위기와 성과를 바탕으로 이번에도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비즈월드=최상규 기자 / csgwe@biz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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