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14(상)- 힛도에서 백야(白也)의 등대를 바라보다
[이해덕의 南道春風] 14(상)- 힛도에서 백야(白也)의 등대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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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여수 화양반도와 백야도>

나는 지금 ‘힛도’라는, 이름만큼이나 생경한 포구에서 멀리 백야도의 등대를 바라다보고 있다. 하얀 등탑은 마치 불시착한 우주선과도 같다. 그 등대는 잘생긴 백야대교를 건너면 쉽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왠지 이곳 힛도에서 바라다 봐야 제 맛이 난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백야의 잘 닦인 길을 돌고 돌아 찾아가면 그만이다. 등대로의 접근도 생각보다 쉬운 것이어서 등대로 내려가는 입구,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고 계단 길을 따라 가면 된다. 1928년에 점등한 백야도등대는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등탑 안쪽은 나선형 계단이며 여수와 나로도간을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힛도’를 아십니까?>

힛도.

얼마나 유니크한 이름인가. 우리 땅 곳곳에 독특한 땅 이름이 무수히 많지만 힛도만큼 우리말 표기의 무한성(?)을 보여주는 이름은 아직 보지를 못했다. 2년 전 여름. 백야대교를 건너기 전 ‘힛도’라 쓰인 이정표를 보고는 잠시 눈을 의심했었다.

‘???’

잘못 봤나? 몇 번이고 다시 봐도 분명 힛도였다. 이는 지난 80년대 초반 ‘궉’씨 성을 가진 사람이 동네에 이사를 왔을 때. 곽씨가 아니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던 기억만큼이나 낯선 발견이었다. 사족이지만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나오는 청주궉(鴌)씨는 ‘꿩’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으로, 2000년대 초반 국내 인라인스케이트의 요정으로 불리던 궉채이로 인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

우리 땅에서 가장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이름으로는 ‘비인(庇仁)’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독특한 언어를 가진 제주는 제외하고 말이다. 충남 서천군에 있는 비인은 조선시대 비인현이었을만큼 꽤나 유서깊은 곳이다. 당시의 읍치는 지금의 비인면을 비롯해 서면, 종천면, 판교면 등 서천군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금도 현청이었던 객사가 남아있을 정도다.

내가 비인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오래 전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학기동안 임시로 담임을 맡다 장항농고로 전근을 간 선생님이 계셨다.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선생님은 학사장교 출신답게, 익숙한 군기로 아이들을 대했다. 체벌이 흔하던 시절. 폭력에 가까운 체벌은 아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대학생이던 맏형과의 우연한 교분 때문인지. 나에게는 유독 관대한 편이었다.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은 마침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온 맏형을 만났던 것이다.

한 학기를 마치고 전근을 갔지만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선생님은 여선생님과 소위 ‘연애’란 것을 했었나 보다.

그 시절. 선생님들의 교내 연애는 심심찮게 화제에 오르고는 했는데. 이상한 것은 주로 여선생님이 오지로 전근을 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는 두 명의 여선생님이 모두 ‘마도’라는 곳으로 전근을 간 일이 있었다. 그곳은 유배지라는 소문이 돌았다. 마도는 어디일까? 혹시 외딴 섬일까? 의문은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화성군(현 화성시)의 서쪽 끝인 서신 매화리를 가면서 풀렸다. 남양을 지나니 길옆으로 ‘마도국민학교’를 가리키는 조그만 이정표가 보였던 것이다.

5학년에 올라가 1학년 교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다행히 유배를 면한 여선생님은 내게 편지를 건네주셨다. 선생님의 편지였다.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지리부도를 펼쳐들고 장항이 어디쯤인가를 찾다가 비인을 발견한 것은. 비인을 발견하고도 이름 때문에 한동안 그곳은 낯설었다.. 그리고 막연한 추측을 했다. 아마 그곳은 이름처럼 늘 비에 젖어 우수에 찬 곳은 아닐까.

오랫동안 막연했던 비인에 대한 무지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서해안고속도로가 뜛리고 비인 인근 마량포구가 주꾸미로 유명세를 타면서였다. 굳이 주꾸미가 아니더라도 마량포구 화력발전소 뒤편 동백숲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그렇게 찾아간 서천군에서 비인의 실체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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