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0-19 04:00 (토)
[이해덕의 南道春風] 9(하)- 호남의 처사(處士), 섬호(剡湖) 진경문(陳景文)을 찾아가는 즐거움
[이해덕의 南道春風] 9(하)- 호남의 처사(處士), 섬호(剡湖) 진경문(陳景文)을 찾아가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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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여양진씨의 내력>

진씨가 희성인데다 관향마저 ‘여양’이라는 귀에 익숙지 않은 지명이다 보니 자칫 중국에서 도래(渡來)한 성씨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여양은 지금의 충남 홍성군 장곡면 일대를 말한다. 고려시대 여양현으로 불린 까닭에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진씨의 관향이 됐다.

시조는 고려 인종 때의 명장 진총후(陳寵厚)다. 그가 ‘이자겸의 난’에 공을 세우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짐으로써 여양진씨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선대는 원래 중국 사람으로, 송(宋)나라 때 우윤(右尹) 벼슬을 지낸 수(琇)가 고려에 귀화해 여양현 덕양산(德陽山) 아래에 은거한 것이 한국 진씨의 효시로 보고 있다.

진총후를 시조로 하는 여양진씨는 그의 증손대에 이르러 시중공파(侍中公派)·어사공파(御史公派)·예빈경파(禮賓卿派)·매호공파(梅湖公派)·전농공파(典農公派)의 5파로 나뉘며 세거지(世居地)에 따라 분관(分貫)된 신광((神光), 경주(慶州), 강릉(江陵), 삼척(三陟), 나주(羅州), 진산(珍山) 진씨는 여양진씨 대동보(大同譜)에 합보(合譜), 등재돼 있다.

이밖에 진씨로는 광동진씨가 있다.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후손으로 명나라가 망하면서 손자인 영소가 조선으로 망명해 해남에 뿌리를 내렸다. 이들은 관향을 진린의 중국 근거지였던 ‘광동’으로 정하고. 해남에 ‘황조별묘(皇朝別廟)’를 지어 진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은 명의 멸망에도 망명인들을 ‘황조인’으로 대접했다.

더 이상 빈 배는 오지를 않는다

월송리를 찾아가는 길은 만추의 가을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몽탄대교를 건너 동강면소재지 방면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진천리 운정(雲庭)마을이 있다. 그런데 마을이름이 왠지 낯익다. 맞다. 국무총리를 지닌 ‘영원한 2인자’ 김종필(金鍾泌, JP)의 아호가 아니던가. 사연인즉 이렇다. 1968년 7월이었다. 이 지역은 3년동안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고, 공화당 의장이었다 물러나 야인이 된 JP가 이곳을 찾았다. 초가지붕의 짚마저 바짝 마른 모습을 본 JP는 자신의 미숙전시회 수익금 전액인 450만원을 마을에 쾌척하고 떠났다.

당시의 450만원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져 5억원이 넘는 거액. 마을 사람들은 이 돈으로 164가구의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와 기와 등으로 개량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신안 하의도에서 돌을 사서 영산강 뱃길로 싣고 와 마을창고를 지었다. 하의도는 잘 알려진 대로 15대 대통령인 김대중(金大中,DJ)의 고향이다. 하의도 돌은 건축자재로 인기가 좋았다. 이 얼마나 기막힌 우연인가? JP가 희사한 돈으로 DJ의 고향 돌을 사다 창고를 짓다니. 진천리에서 이뤄졌던 이 예사롭지 않은 일들은 30년 뒤인 1997년 ‘DJP연합’의 징조는 아니었을까? 그런 인연으로 마을이름에 JP의 아호를 붙여 그를 기리기로 한 것이었다.

길가로는 감나무가 많았다. 역시 가을에는 감이 참 좋아 보여. 동강면 소재지에서 함평, 영광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양지리 4거리에서 좌측으로가 대지, 월송리로 가는 길.

월송리에는 무안 몽탄 봉산리와 사창리로 건너가는 신설포나루가 있다. 일제시대 신작로가 닦이면서 새로 생겼다해서 ‘신설포(新設浦)’가 됐다는데. 강건너 봉산리의 포구도 역시 같은 이름의 신설포나루다. 양지리 모산개나 월송, 대지리 사람들은 이 나루를 이용해 강을 건넜고. 사창역에 가서 대처로 나가는 기차를 탔다. 신설포와 옆동네인 대지리의 선부리 사이에 ‘섬포(剡浦)’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호강에 사포가 있는 것처럼 섬호강의 섬포라 불렀으리라. 이 나루를 이용해 섬호와 교유하던 문인들이 월송리를 오고갔을 것이다.

인간도처유상수(人間到處有上手)라고 했던가. 진정한 방외거사(方外居士)를 찾아가는 즐거움. 인물 많은 나주 땅에 섬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오롯한 호남의 처사를 찾아냈다는 기쁨이기도 하다.

월해마을에는 섬호정이 없다. 마을 입구에 있는 ‘섬호진선생경문유적비(剡湖陳先生景文遺蹟碑)’를 발견하고는 지나가던 마을 아주머니에게 섬호정을 묻는다.

“여기 섬호정이라고. 오래된 정자가 어디 있나요?”

“없어요.”

“???”

“그럼 대지리에는요? 곡호정이라고.”

“거기 것은 전에 뜯어버렸다는디.”

사라진 것이 어디 섬호정 뿐이랴. 신설포나루도 제방이 쌓이면서 사라졌다. 그 위로는 잘 포장된 자전거도로가 지나간다. 나루 주변으로는 넓은 백사장이 있고. 강폭이 넓어져 호수와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 사호강.배를 타고 건넜던 이곳에는 1992년 동강대교가 놓였다.

서걱이는 갈대. 그 만추의 강을 따라 천천히 곡강을 흘러간다. 나루의 사공집 툇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강 건너 사공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안녕하실까. 이제는 더 이상 오지 않을 빈 배. 무심한 갈대를 배웅삼아 천천히 월송리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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