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8 08:00 (수)
[이해덕의 南道春風] 6(하)- 영광 염산 향화도 칠산타워, 그 바다에 넋을 놓다
[이해덕의 南道春風] 6(하)- 영광 염산 향화도 칠산타워, 그 바다에 넋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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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황조인촌’으로 불렸던 향화도>

향화도는 그 어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상해’라고도 불렸다. 이웃에는 와도(臥島)가 있었다. ‘누운 섬’인 와도를 사람들은 ‘눈 섬’이라고 불렀고. 일제는 ‘눈 섬’을 ‘눈 설(雪)’자를 써서 ‘설도’로 표기해 그대로 굳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모두 육지가 됐다.

철종 3년(1852)에 충청감영에서 올린 장계가 적힌 ‘각사등록(各司騰錄)’을 보면 ‘28일에 발선(發船)하여 영광(靈光) 향화도(香花島)에 이르러 유숙(留宿)하고, 29일에 풍세(風勢)가 순조로워 하루 종일 배를 몰고 밤에도 머물지 않았으며, 30일에 또 순풍을 만나 원산(元山)에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안흥진(安興鎭) 앞바다에 이르러 유숙하고...’라는 기사가 보인다.

서해바다를 끼고 있는 향화도는 천혜의 포구가 없기 때문에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그런 연유로 어선들이 출항을 포기하고 정박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함평에서 거둔 세곡을 실은 운반선도 이곳에서 바람이 잦기를 기다렸다 출항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호가 편찬한 지리서인 ‘대동지지’(1863)에는 ‘향화도는 (영광읍)서쪽 45리에 있고, 흑룡강 사람이 임진년에 표류하여 이곳에 도착하자 군수가 그 섬에 살게 하고 섬의 이름을 황조인촌(皇朝人村)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임진년은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문을 닫은 1644년 이후인 1652년으로 보인다. ‘황조(皇朝)’는 조선이 사대(事大)했던 명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명나라가 망하자 일부는 조선으로 망명했고. 조선은 이들을 황조인으로 대접했다. 이러한 호남의 대표적인 마을이 해남 산이면의 황조리다.

또 1872년 지방지도에는 향화포로, ‘조선지형도’에는 향화도(向化島)로 표기돼 있다. 1912년 육창면 향화리(向化里)였으나, 1914년 영광군 군남면 옥슬리(玉瑟里)로, 다시 1983년 염산면으로 편입됐다.

앞서 보았듯이 향화도에 대한 한자 표기는 제각각이다. 이밖에도 ‘한국지명총람’에는 ‘向花島’로 표기돼 있다. 그러나 정조 22년(1798) 9둴 3일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을 보면 ‘向化’가 정확한 표기임을 알 수가 있다.

‘영광(靈光)의 박승복(朴昇福) 사건은 소송의 냉용이 비록 무엄하기는 하나, 명색이 황조(皇朝) 사람의 자손으로서 그 보살핌이 점점 예전만 못하다 보니 그들의 풀 수 없는 응어리가 마치 막다른 길을 봉착한 사람이 돌아갈 길이 없게 된 것과 같다. 어찌 너무도 불쌍하지 않겠는가. -중략- 황조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와 사는 자를 화(化)로 이름 짓는 것은 너무도 말이 안 되어서 모든 문서에 향화(向化)의 두 글자를 쓰도록 신칙하였으나, 호남인즉 아직까지도 화로 일컫고 있으니, 무식하다고 말할 만하다. 이 뒤로는 황조인촌(皇朝人村)으로 개칭하고 경외(京外)에 장적(帳籍)과 읍지(邑誌)도 이에 의거하여 바로잡도록 분부하며...’

향화도도 영광군이 첫 손에 꼽는 경관인 백수해안도로와 같이 일몰의 명소다. 향화도 앞의 두 섬 사이로 지는 일몰은 일 년 중 봄, 가을로 5일 가량밖에 못보는 장관이다. 칠산대교와 연결되는 무안 도리포는 서해안에서 보기드문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다리가 개통되면 이곳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화도가 새우의 산지라면 이웃 설도항은 젓갈이 유명하다. 설도 젓갈은 부안 곰소항과 충남 강경 젓갈과 비교해 나으면 나았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상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설도항 둘레길에서 편지를 쓰다>

9월 첫 날. 해남 아우 P와 함께 향화도를 다시 찾았다. 요즘 제철인 ‘오도리(踊り)’라 부르는 살아있는 보리새우를 맛보기 위한 미식여행을 겸해서 였다. 작년 이맘때도 이곳에 와 보리새우를 먹었다. 크기도 실한 것이 얼마나 펄떡이던지. 간신히 등껍질을 따서 기선을 제압한 뒤 몸통의 갑옷같이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그대로 한 입에 넣으니. 쫄깃하니 단 맛이 느껴진다. 왜 ‘영광 9미(味)’인줄 알겠다. 그런데 동행한 P는 대학 다닐 때 자주 와봤다는 설도항을 고집한다. 익숙한 것에 충실한 호남인의 기질을 엿보게 하는 P의 고집에 하는 수 없이 향화도에서 설도항으로 향하였고. P는 자기 마음대로(?) 대하와 꽃게찜을 주문하는 고집을 보탠다. 그런 P의 고집을 용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대로 계획한 영광 나들이길을 먹거리로 시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향화도를 갔으면 으레 설도를 들르게 된다. ‘영광 9품(品)’인 젓갈도 좋지만 설도항에서 합산항까지 7km 방조제와 다시 염전과 청보리 농장이 있는 해안도로 5km를 연결하는 둘레길이 있어서다. 가을이 오는 길목. 이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노을이 질 무렵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그대로가 근사한 세레나데일 것만 같은 길. 그 길에서 오랫동안 격조했던 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멀리서 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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