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1- '화순(和順) 적벽(赤壁) 가는 길'
[이해덕의 南道春風] 1- '화순(和順) 적벽(赤壁)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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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어느 쓸쓸한 오후.

낡고 어색한 행장을 한 나그네가 표표히 부석사(浮石寺) 산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나그네는 천왕문에 이르러 먼 길의 호흡을 고르려는 양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사바세계의 풍상을 혼자서 짊어지고 온 듯 행색은 비록 남루했으나 눈빛은 형형했다.

장엄한 대석단(大石壇)의 석축을 일별한 나그네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혼잣말로 되뇌었다.

'과시 구품만다라(九品曼茶羅)로고.'

그러고는 나그네는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구품만다라.

사람들은 부석사를 그렇게 불렀다. 상품(上品), 중품(中品), 하품(下品)으로 나뉜 가람의 계단을 차례로 오르면 마침내 극락세계에 다다른다고 했다. 천왕문까지가 하품, 천왕문에서 법종루까지가 중품, 범종루에서 안양루(安養樓)를 상품으로 보고,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면 비로소 극락세계에 들어선 것으로 믿었다.

풍자(諷刺)가 아니면 해탈(解脫)이라고 했던가?

나그네는 안양루에 이르러 흘낏 무량수전을 바라보고는 가볍게 전율했다.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떠도는 인생에 극락을 보다니. 한껏 무량해진 마음으로 어느새 나그네는 안양루에 올라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안양루에서 바라다 본 태백의 능선은 황홀했다.

살아 꿈틀거리듯 겹겹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조화는 마치 승천을 앞둔 용이 마지막 호흡을 고르는 듯 경이로운 것이었다.

‘아하! 인간 백세에 이런 경관 몇 번이나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신음하듯 토해낸 탄식. 절창이다.

지나온 인생. 부질없는 세상사. 모든 것이 가슴에 사무쳤다.

나그네는 안양루를 내려와 속절없다는 듯 무량수전을 뒤로한 채 삿갓을 내려 쓰고는 곧장 산문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적벽으로 가는 길은 무등(無等)의 여운 탓인지 내내 안온했다. 예외 없이 이곳에도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리면서 예전 비포장 길의 운치는 사라졌지만 굽이굽이 감돌 듯 흐르는 길은 자못 인상적이다.

'동복(同福), 이서(二西)'방향 이정표를 따라 길을 풀어가다 보면 '적벽 가는 길'이라는 큼지막한 바윗돌에 새겨진 표지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나 적벽의 진수를 보여주는 화순 적벽, 일명 '노루목'은 통행이 제한돼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인터넷 사전예약한 사람만 버스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노루목에 버금간다는 물염(勿染) 적벽을 찾아 나설 수밖에.

물염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오래된 마을을 만난 건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野沙)리.

이곳에 천연기념물 303호로 지정된 야사리 은행나무가 있다. '김삿갓 은행나무'로도 불리는 나무다. 나무의 둘레가 10 미터에 이르는 노거수(老巨樹)다. 마을이 형성된 조선 성종조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500년 은행나무의 위용은 가히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다. 남근을 닮은 늘어진 유주가 익살맞다. 삿갓은 적벽을 오가는 길에 이곳에서 다리쉼을 했을 것이다. 마을에서는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나라에 길흉을 알리는 신통력을 지닌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평상시에는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로 널따란 상석(床石) 주위로 나무 데크를 깔아놓았다.

은행나무 옆으로는 벤치가 놓인 것으로 봐서 공원을 조성해놓은 듯 한데 거의 방치된 상태이고. 토끼풀꽃이 무리 져 피어있다. 어린 시절 꽃반지를 만들던 그 꽃이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는 물론 덤이었고.

늦가을 은행잎이 떨어지면 다시 오마 하고 야사리를 떠나 동복천 물줄기를 길잡이 삼아 담양으로 잠시 경계를 넘어갔다 숨바꼭질 하듯 크게 한 번 또 다시 조금은 작게 한 번. 물줄기를 거슬러 가니 고개 너머 물염이 반갑게 맞는다.

여기는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물염 마을.

물염(勿染)- 물들지 말라.

속세에 물들지 말라니. 이곳이야말로 선경이 아니겠는가.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던 김삿갓,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은 이곳 물염 적벽에서 또 한 수의 절창을 남긴다.

'무등산이 높다 하되 소나무 아래 있고(無等山高松下在), 적벽강이 깊다 하되 모래 위에 흐르네.(赤壁江深砂上流)'

생전에 세 번에 걸쳐 적벽을 찾았다는 김삿갓(일설에는 말년에 6년간 화순 동복에 머물렀다 함). 화순군은 이를 기려 단출한 모양새를 한 물염정 옆으로 그의 시비와 석상, 그리고 7폭 병풍에 시를 새겨 놓았다.

혹자는 의아해 할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삿갓을 만나다니. 그러나 이곳에 삿갓의 시비를 건립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바로 삿갓이 물염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

죽장에 삿갓 쓰고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떠돌던 삿갓은 1863년. 동복의 안 참봉댁 사랑방에서 눈을 감는다. 마침내 이 풍진 세상과 이별을 하고, 물들지 않는 세상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간 것이다.

때 이른 폭염이 계속되고 신록이 우거진 유월이라 적벽의 진면목은 볼 수가 없었다. 동행한 해남 아우가 위로하듯 한마디 거든다.

"봄에 벚꽃 필 때가 좋아요. 물염정 주위로 벚꽃이 만개하면 기가 막힙니다. 그 때 다시 오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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