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

#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 맞는 국어 수업시간

왜소한 체구에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적당한 장발의 국어 선생님이 바지런한 걸음으로 교실문을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의례적인 인사를 받으시고는 말없이 칠판으로 돌아서서 ‘서시(序詩)’라는 제목의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그대로가 감동이었다. 나는 서점에 들러 같은 시집을 두 권 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나는 내가 읽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다정한 그 애에게 주려고였다. 그 애에게 시집을 건네며 나는 말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이고 싶어. 그러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애. 그러고 보니 너 윤동주를 닮은 거 같다, 얘. 말하는 그 애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 중3 초여름 경춘선 기차 안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군복무중인 맏형을 면회하러 춘천에 갔다. 봄철 누에를 치고 고치를 공판장에 수매하자 목돈이 들어왔을 때. 어머니는 가장 먼저 군에 간 큰아들이 생각났는지 막내인 나에게 면회를 다녀오라 하셨다. 수학여행 이후로 혼자 장거리를 떠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왠지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렇게 만난 맏형과 춘천에서의 1박 2일. 춘천의 명동에 들러 닭갈비를 먹었고.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소양강댐을 찾아가 즉석사진도 찍었다. 주말이라 기차는 붐볐다. 남춘천역에서 기차를 탄 나는 기차간까지 올라와 좌석을 마련해준 형 덕분에 여학생과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좌석은 서로 마주 보게 돼있었다. 기차가 강촌역을 지날 무렵 맞은 편의 청년이 여학생에게 물었다. 어느 학교 다녀요? 여학생은 춘천 유봉여고에 다닌다고 했다. 계속된 청년의 질문에 나는 그녀가 여고 2학년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청년의 마지막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학생은 동생인가요?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의 여학생을 보았다. 예쁘다. 그녀는 예뻤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는 그녀처럼 예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기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선반에서 큼지막한 캐리어를 내리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플랫폼을 벗어나 청량리역 광장을 가로질러 사라져갔다. 광장에 멈춰 선 채로 멀어져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정(情)’이라는 시를 썼다.

멀고 먼/ 그리고 그리운/ 강촌의 정/.../미련만 남긴 채/ 애타게 앙모(仰慕) 하나니.
처녀시(處女詩)였다.

<윤동주 시에 깔려 있는 ‘부끄러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광수 교수는 1983년 ‘윤동주 연구: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라는 박사논문을 썼다. 이 논문에서 마광수는 국문학 역사상 처음으로 윤동주의 모든 시를 분석한다. 그리고는 윤동주의 시에 ‘부끄러움’이라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부끄러움.

식민지의 청년으로 살아야했던 그가 느꼈을 무기력감. 그리고 간도 용정(龍井)에서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하기까지. 사색의 깊이가 남달랐던 그였기에 그 사색의 깊이만큼 가슴앓이도 컸을 것이다. 죽어서 시인으로 유명해진 그이지만, 살아서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던, 고뇌하는 식민지의 청년이었다.

그의 시에는 남다른 ‘울림’이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시를 읽는 순간, 반응하는 감정의 울림이 여느 시들에 비해 빠르게 나타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아마도 하늘, 바람, 별과 같이 일관되게 관통하는 서정성 짙은 시어(詩語)와 ‘요절’이라는 비극적 요소가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과 맞아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학사모를 쓴 준수한 용모 또한 감성세대와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진 속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의 시 ‘자화상’의 윤동주를 만나게 된다. 왠지 부끄러운 듯 수줍은 얼굴.

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망덕포구>

망덕포구에를 갔다.

진안에서 발원한 삼진강물이 고단한 여정의 마지막을 끝내고 바다로 향하는 곳. 망덕포구는 봄에는 벚굴로, 가을에는 전어로 유명하다.
6년 전 봄엔가. 친구들과 셋이서 남도를 여행하며 마침 때를 맞은 벚굴을 맛 보기 위해 들렀던 망덕포구. 그러나 맛이나 보려고 조금만 팔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안 팔고 한 망태기씩 판다고 해서. 결국은 맛을 보지 못하고 야박한 인심을 탓하며 떠나야했던 그 곳.

첫인사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당시 진해 군항제를 보러 서두르느라 미처 들르지 못했던 한 곳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점포주택 구조를 한 보기 드문 일본식 가옥인 이곳은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으로 남아있다. 이 집이 유명해진 것은 일본식 가옥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 보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를 보관한 곳이라는데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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