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11(하)-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마라"
[이해덕의 南道春風] 11(하)-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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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2017년 12월. 보성 문덕면 동산리 법화마을에 있는 ‘안규홍·박제현 가옥’이 등록문화재 제699호로 지정됐다. 안규홍과 박제현은 구한말 일제에 항거한 공로로 머슴과 주인이 함께 서훈을 받은 유일한 경우다. 머슴의병장으로 유명한 안규홍은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고. 안규홍 의병부대의 군량관이었던 박제현(朴濟鉉, 1871~1934)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문덕면 동산리 대지주였던 박제현은 자신의 집 머슴인 안규홍이 의병을 일으킬 때 군량관을 맡아 군량 및 군기조달에 진력한다. 봉건사회의 전통이 남아있던 당시 사회에서 주인이 머슴을, 그것도 휘하에서 도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박제현은 1909년 문덕면 병치에서 붙잡혀 일본 헌병에게 고문을 당해 불구로 고초를 겪다 63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헛간, 사당 등 모두 6동으로, 안규홍 의병장이 약 20여 년간 담살이를 했던 사랑채와 박제현의 안채가 원형대로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대한매일신보는 안규홍의 의병활동을 기사로 남기고 있다. 1909년 1월 9일자는 ‘수십 년 동안 머슴을 살았던 한 젊은이가 근처에 있는 머슴 백여 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고 했으며 같은 해 5월 20일자는 ‘보성군에 사는 담살이라 칭호하는 안모(安某)가 의병을 다수 모집하여 군 경내에 두류하는데 거민(居民)에게는 침어지폐(侵漁之弊)가 추호도 없다더라’하며 의병의 모범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제는 안규홍 부대를 비롯한 호남 의병을 토벌하기 위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한다. 특히 안규홍 부대에 대해서는 육상과 해상에 걸쳐 포위망을 구축하는 한편 회유와 협박을 병행, 이로인해 다수의 의병들이 투항하고 이탈자가 늘어나자, 1909년 7월 안규홍은 의병부대를 해산하기에 이른다.

“밖으로는 개미만큼의 후원도 없고, 안으로는 범이 잡아먹으려는 위급한 지경에 있다. 게다가 선량한 백성에게 해독이 미치고 있으니 나의 죄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여러분들은 각자 잘 계획하여 다시 후일의 거사를 도모하라.”

그리고 2016년.

창작극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이 서울, 광주, 보성에서 공연된다. 안담살이 의병장의 투쟁은 백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그렇게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람들은 안담살이가 벌교 주먹의 원조라면 벌교 주먹의 완성으로는 김항수를 꼽는다. 벌교 태생인 그는 한때 전라도 일대를 평정했던 진정한 주먹이었다. 집안도 좋았다. 그의 아버지 김영돈은 판사였다. 그리고 김항수는 광주 서중을 다녔다. 하지만 조선인은 아무리 재력이 있고, 머리가 좋아도 일본에 빌붙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의분한 김항수는 조선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본학생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손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고 한다. 더욱이 그에겐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사고를 쳐서 잡혀 들어가도 판사인 아버지 힘으로 금방 풀려났다.

벌교에는 김항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벌교읍 장좌리 무만동(武萬洞)에서 살았다. 풍수지리상 능히 만명의 무관을 낼 길지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무만동에서 벌교역까지는 오 리 길이다. 광주에서 출발한 경전선(慶全線) 기차는 그가 탔을 때만 유일하게 역이 아닌 곳에서 잠시 정차(停車)를 했다. 그곳은 바로 그의 집 앞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부패한 자유당 정권과 4·19를 겪으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으로 괴로워 했던 그는 술과 아편에 빠졌고. 결국은 길거리에서 객사했다고 전해진다.

벌교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벌교 주먹의 실체는 대략 이렇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무대가 벌교라는 데서 대강 짐작하겠지만 해방공간, 여순반란사건 등을 겪으며 좌우의 이념 갈등과 대립이 두드러졌던 곳이 벌교였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공간이 바로 소화다리다. 좌익과 우익의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있었던 곳이었으며 속절없는 죽음들이 이곳에서 떨어져 원혼이 돼 벌교천을 붉게 적셨다. 이것은 벌교의 깊은 상처였다. 그런 연유로 의병장 안담살이를 시공을 넘어 소화다리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을까? 협객(俠客)이 등장하는 영화의 장면에 익숙하다면 다리 위의 결투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미장센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잖은가.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마라.

한편 요즘 벌교는 온통 꼬막 세상이다. 꼬막이 벌교를 먹여 살린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드렇게 꼬막이 접수한 요즘 벌교 풍경을 보면 주먹도 입맛에는 영 거시기한 게 아닌가도 싶다. 이제 벌교 주먹은 잊어라. 그리고 벌교 가면 꼭 꼬막을 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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