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오직 하루 한 번, 기차는 9시 35분에 떠나는 목포발 부전행 무궁화호 남도횡단열차.

남도에 하루 단 한 번뿐인 기차가 있다. 기차는 목포와 부산을 오간다. 경전선(慶全線) 부전행 열차. 하지만 나는 이 기차를 감히 남도횡단열차라 부르겠다. 이 땅에 횡단열차라니. 모름지기 횡단열차라 함은 시베리아나, 유라시아, 또는 호주의 인디안퍼시픽과 같이.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라야 격에 맞다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이 땅의 동과 서를 종횡무진으로 횡단하는 철도가 엄연한데. 황감히 받아들일 수밖에.

엊그제 스무살 청춘을 함께한 친구 R이 근 일 년 만에 내려왔다. R과 유달산 자락을 걸으며 모처럼 오랜 회포를 풀고. 목포역에서 밤 8시 30분에 출발하는 SRT로 떠나갈 때. 갑자기 나도 기차가 타고 싶어졌다.

그래. 까짓거 타보는 거야.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어디 한 번 훌쩍 떠나볼까나.

목포발 부전행 무궁화호 열차. 기차는 오전 9시 35분에 떠난다.

명색이 무궁화호라지만 통일호와 비둘기호가 모두 사라진 지금, 속도의 등급에서 고속철도인 KTX와 SRT, 그리고 예전 최강자 새마을호에 밀려 이젠 완행열차처럼, 기차는 느릿느릿 어지간한 간이역은 모두 쉬었다 간다. 도대체가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달랑 3량뿐인 기차의 노선은 목포에서 광주 송정역까지는 호남선으로. 그리고 송정역부터는 경전선으로 간다. 그야말로 남도를 종횡무진 누비며 간다.

경전선 철로변의 풍경은 기가 막히다. 뿐만 아니다. 기차가 멈춰서는 간이역은 또 어떤가. 시간이 머무는 듯 그대로가 문화유산인 역사(驛舍). 백 년 가까운 내력을 지닌 역은 숱한 추억이 묻은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차를 기다리던 간이역 대합실의 낡은 나무의자에 머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선로가 바뀌면서 대부분의 역사도 현대식 건물로 단장을 했고. 간혹 뜨내기인 듯 낯선 손님만이 생경한 표정으로 플랫폼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잡힐 뿐이다.

그래도 한 때는 막차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던 때도 있었지. 기적을 울리며 나타나는 막차의 전조등이 마치 구원의 불빛인 양 안도하던 기억.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얼마나 따스한 위안이었던가.

그런데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 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 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장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 ‘사평역(沙平驛)에서’ 전문-

경전선이 낳은 걸작으로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꼽을 수가 있다. 이 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으로 배경인 사평역이 어디인가를 놓고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물론 실제와 같은 사평역은 가공의 역으로 남광주역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일설에는 발음이 비슷한 남평역을 모델로 했다고 하나 이는 그렇지가 않다.(이 열차는 남평역에 정차하지 않았다)

남광주역이 사평역의 모델이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1922년 경전선이 개통되면서 무안, 함평, 나주와 화순, 장흥, 보성 등지에서 장꾼들이 이곳 남광주역으로 몰려들어 장을 열기 시작했다. 남광주시장은 싱싱한 농수산물로 인기가 높아 양동시장과 함께 광주의 양대 시장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렇게 남광주역은 장꾼들의 종착역이 됐다.

그러나 도심철도 이전에 따라 도로의 개설과 확포장으로 2000년 8월 남광주역이 폐지되면서 남광주시장 또한 예전의 명성은 무색해지고 여느 재래시장으로서의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다만 ‘도깨비시장’이라 하여 지금도 새벽시간대에 장이 서 남광주역의 명물로 인기가 높다. 또 이곳에는 지하철 남광주역이 있다. 통근, 통학열차로 이용되던 경전선과 광려선(솽주~여수)의 도심 구간 폐지로 인해 남광주역을 비롯해 앵남, 만수, 석정리, 입교, 도림, 광곡역 들이 이용객의 감소로 문을 닫는다.

한편 곽재구가 ‘사평역에서’를 쓰자 같은 해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남대 친구인 임철우는 1983년 이를 모티브로 한 ’사평역‘이란 소설을 발표한다.

사평역.

굳이 이 시의 전문을 소개하는 건. 그대로가 단락단락 훌륭한 미장센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시를 읽으면 마치 영화를 찍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사뭇 몽환적이다. 한편으로는 오장환의 시, ‘The Last Train’의 ‘비애(悲哀)’와도 맞닿아 있다.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있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구를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 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있다.

목포를 떠난 기차가 처음 멈추는 곳이 임성리역이다. 이 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남도청과 인접한 임성리역은 남해안고속철도의 종착역이다.

남해안고속철도 사업이란 경부선과 호남선에서 연결이 안 된 곳을 연결해서 남해안의 동쪽과 서쪽에 간선철도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부산(부전)에서 목포(임성리)까지 총 6개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영남 쪽 부전~마산 구간은 복선전철화로 공사 중이며,삼랑진~진주, 진주~광양까지는 이미 복선전철화로 개통됐다.

호남 쪽 광양~순천 구간은 복선전철로 개통됐지만, 순천~보성 구간은 단선비전철 상태이고. 보성~임성리 구간은 단선비전철로 공사 중이다.

따라서 오는 2020년 준공 예정인 보성~임성리 구간이 개통되면 지금의 목포~광주 송정역을 경유하는 이 열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임성리 다음 역은 ‘품바’ 발상지로 알려진 일로역. 하지만 호남선 복선전철화로 지난 2001년 일로읍에서 외곽인 삼향읍으로 역을 이전했다. 일로역은 1914년 호남선 개통 당시 삼향역이었다가 1924년 명칭을 변경한 이력이 있다. 따라서 역 이전으로 본래의 이름따라 간 셈이지만 그대로 일로역을 쓰고 있다. 일로역은 호남선 지선인 대불선과 연계된다. 2004년 개통된 대불선은 일로역과 대불역간 12km 구간을 말한다.

기차는 몽탄과 무안역을 지나간다. 영산강과 인접한 이들 역은 강 건너 나주 동강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기차를 타곤 했다. 일제가 철도를 깔 때. 신작로를 닦으며 새로 놓은 나루는 강을 마주하고 나란히 ‘신설포(新設浦)’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안역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사창(社倉)역으로 익숙한 역이지만 1985년 이름이 바뀌었다.

무안역을 지나면 함평역이다. 이 역도 본래는 학교(학다리)역이었으나 2001년 역을 이전하며 함평역으로 바뀌었다. 학교역은 학교면사무소 부근에 있었다. 이곳에서 함평읍까지는 6km남짓한 거리로 1927년부터 1960년까지 학교역과 함평읍까지 함평궤도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함평역을 떠난 기차는 고막원역과 다시역을 차례로 지나 나주역에 닿는다. 나주역에서의 소회는 영산포역의 퇴장이다. 영산포역은 새마을호를 포함한 모든 열차가 정차하던 명실상부한 나주의 대표역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주역엔 새마을호가 정차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남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영산포역이 폐지되고 나주역과 합쳐져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영산포역 자리에는 나주철도공원이 조성돼 있다.

그렇듯 호남선 복선전철화사업으로 대부분의 역들이 이전됐거나 일부는 폐역이 됐다. 속도에 밀리면서 예전 아날로그적인 서정(抒情)은 상당부분 사라져간 것이다. 더욱이 이전한 역들은 접근성마저 떨어져 철도이용을 회피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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