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영산포 다리의 역사>

영산포(榮山浦).

왠지 그리운 이름이다. 왜일까? 꽃말이 ‘첫사랑’이라는 영산홍(映山紅)과 닮은꼴 이름이라서? 그것은 단지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감(語感)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 영산강 뱃길의 종착지로 번성했던, 또 호남선 철도 위를 숨 가쁘게 오고 가던 철마(鐵馬)가 긴 숨을 고르던 영산포는, 그러나 지금은 없다. 붐비던 포구(浦口)와 역사(驛舍)는 마치 거짓말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영산강하굿둑으로 뱃길이 끊어지고, 호남선 직선화로 영산포역이 나주역으로 통합된 까닭이다.

예전 영산포역이 있던 곳에는 나주 철도공원이 조성됐다. 홍엇배로 붐비던 나루는 선창거리와 홍어거리로 남았다.

영산포는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선창으로 흥청거렸던 영산동 지역과 영산포역이 있던 영강동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을 연결하는 다리가 영산교와 영산대교다.

영산포 다리의 역사는 유구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진(錦江津, 영산포 옛이름)에 영산교가 있어 매년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아마도 섶다리였을 것이다.

호남선 철도가 개통된 1914년 당시. 이곳에는 개폐식 목교가 있었다. 영산포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일본인 개인회사가 축조한 개폐식 목교는 나주로 통행하는 배들이 지날 때면 다리 가운데 부분을 들어 올려 지나가도록 했으며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행료도 받았다. 개폐식 다리는 부산 영도와 신의주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곳 영산포에도 있었던 것이다.

일제시대인 1922년에는 영산포 등대 옆에 ‘영산구교’라는 나무다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일제는 콘크리트 공법의 ‘영산교’를 세웠다. 영산포역과 선창을 연결하는 영산교의 축조는 수탈을 위한 것이었지만 나주에서 영암, 강진, 해남 등으로의 통행이 한결 수월해지며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영산교는 1995년 철거되고 1999년 지금의 다리가 놓여졌다. 이보다 앞서 1971년에는 영산교에서 상류쪽으로 영산대교가 건설된다.

<‘선창거리’를 거닐며>

선창거리에는 영산포 등대가 있다. 우리나라 내륙의 강가에 있는 유일한 등대다. 등대가 있다는 것. 이곳 영산강이 얼마나 붐볐으면 밤길의 통행이 용이하도록 등대가 세워졌을까. 영산강은 영산포의 강이었다. 담양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이곳 나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다운 위용을 갖추게 된다. 영산강 본류의 강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나주 동쪽으로는 ‘광탄강(廣灘江)’이라 했고. 영산포 부근에서는 ‘남포강(南浦江)’, ‘금강(錦江)’, ‘목포강(木浦江)’이라 했으며 강폭이 넓어지는 나주와 함평계(界)에서는 ‘사호강(沙湖江)’, 다시 남하해 나주·무안계에서는 강이 심하게 곡류하므로 ‘곡강(曲江)’이라 불렀다.

영산강은 영산포와 같은 핏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흑산도 옆의 영산도(永山島)와도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따르면 고려 말엽, 왜구들이 남해안을 노략질 할 때 나라에서는 ‘공도(空島) 정책’으로 섬 주민들을 육지로 대피시켰다. 당시 영산도는 흑산도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흑산도가 영산도일 때였다. 이곳의 사람들도 공도정책으로 나주 남포강가로 이주해왔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영산현’이다. 영산현은 고려 공민왕 12년(1364) 영산군으로 승격했으나 조선시대 들어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없어졌다. 그러나 비록 영산군은 없어졌지만 ‘영산조창(榮山漕倉)’이 설치돼 중종 7년(1512) 영광 법성창으로 옮겨갈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오늘날 영산포는 나주에서 강을 건너 영산동 지역을 가리킨다. 어설픈 모습이지만 복원의 노력이 엿보이는 선창을 거닐면 1915년 세워진 등대와 만난다. 높이 8.65m의 등대는 뱃길이 끊어지며 지금은 영산강 수위관측기능을 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129호.

무엇보다 선창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홍어거리 때문일 것이다. 흑산도에서 싣고 온 홍어가 긴 항해로 자연스럽게 곰삭아 특유의 톡 쏘는 별미로 탄생했다는 유래를 갖고 있는 영산포 홍어. 비록 뱃길은 끊어졌지만 홍어의 전통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선창거리를 거닐다 홍어거리로 내려와 눈에 띄는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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