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연소리라는 지명에 대하여>

활성산 풍력단지가 있는 금정면 연소리의 지명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제비집(燕巢)이라. 땅이름을 정할 때 아마도 풍수지리에 밝은 선인이 상지(相地)를 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마을이름이 된 ‘연소’는 풍수지리상 명혈(名穴)로 꼽는다. ‘연소혈(燕巢穴)’이다. 제비집 모양의 연소혈은 좌청룡 우백호가 견고해 고귀한 신분의 인물을 낳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해남에서는 황산 징의도 마을 형국이 대표적인 연소혈 명당이다. 마을회관에서 보면 좌측 정면으로 수령이 100여 년은 족히 됨직한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을 ‘연자끝’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제비의 꼬리 부근에 해당한다하여 그런 지명이 붙었다. 두 개의 노둣길을 건너야 육지 나들이가 가능했던 시절. 육지 사람들로부터 ‘물아래’라는 업심여김을 당해야 했던 섬 살이. 징의도 사람들은 마을의 발복(發福)을 염원하며 이 소나무들을 심었으리라.

호사가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문재인 대통령도 이 연소혈의 기운을 받아 대권을 쥐게 되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거제 생가 터는 연소혈이지만 뒷산이 몰래 엿보는 규봉(窺峰)이라 기운을 빼앗긴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홍은동 자택이 완벽한 연소혈의 명당이어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소혈은 명당중의 명당으로 꼽는다. 연소리 또한 안산인 활성산과 인근의 좌청룡 우백호격인 산세가 비교적 완만하면서도 어딘가 견고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육산이 주는 넉넉한 기운이라고나 할까.

<대봉감으로 유명한 영암 금정면>

‘바람의 언덕’은 웬일인지 잠잠했다. 풍력으로 전기를 얻으려면 초속 4m이상의 바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육상 단거리와 멀리뛰기 같은 도약경기가 공인(公認)을 받으려면 뒷바람이 초속 2n를 넘으면 안 된다. 그러고보면 4m이상의 풍속은 그리 만만한 바람이 아니다. 그런데 바람은 고요했고, 바람개비도 멈춘 채 허공에 걸려있다. 처음 갔을 때. ‘휘익~’하는 약간은 섬찟한 금속성의 날개 도는 소리를 이미 경험한지라. 멈춰 선 바람개비 또한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활성산을 내려와 여운재를 따라 금정면으로 넘어가는데 P가 다시 말을 건넨다.

“금정은 대봉감이 유명하지라.”

활성산 풍력발전기의 민망함 때문인지 한결 수그러진 말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P를 경솔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P는 나름대로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다만 의외의 경우에 자아가 지나치게 강하게 발동한다는 것. 이는 아마도 해남인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영향이 큰 까닭인지도 모른다.

P의 말대로 금정은 대봉감으로 유명한 곳이다. 길가의 가로수도 대봉감일 정도다. 가을이면 대봉감 축제도 연다. 말하자면 금정의 대표 브랜드인 셈이다.

금정면은 본래 나주 땅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고종 32년(1895) 영암으로 편입되었다. 금정은 금마면과 원정면이 1914년 통폐합되며 생겨난 지명이다. 금마면에는 사금(砂金)이 많이 났다고 한다. 지명에 금(金)자가 들어간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덕진면 노송리와 금정면 연보리의 경계를 이루는 여운재는 조선시대 나주와 영암의 통로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P에게서 대봉감을 들으니 문득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였다. 동창 친구들과 오리쯤 떨어진 ‘서그내’란 머울로 감을 따러 갔었다. 동창네는 울타리가 감나무였는데 그 감이 대봉감이었다. 크고 실한 대봉감. 자잘한 홍시에 익숙했던 나에게 대봉감은 얼마나 뿌듯한 감동이었는지. 대봉감은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대봉감을 올 가을엔 꼭 맛 보고 말겠어. 입가에 고이는 군침을 삼키며 금정을 벗어나 영산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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