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영암 활성산 풍력발전단지>

지난 여름 영광 백수읍에 있는 풍력발전단지를 지날 때였다. 동행한 해남아우 P가 불쑥 물었다.

“저 날개 길이가 몇 미턴지 아십니까?”

“???...”

“사십 미텁니다. 축구장 반만한 크기지라.”

문외한인 내게 으쓱해진 P는,

“이래봬도 제가 신재생에너지 전문갑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십쇼.”

P는 자신만만했다.

“그런가.”

달리 궁금할 것도 없어 나는 의례적인 긍정으로 모처럼의 P의 자신감을 살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고 길가에 구절초가 피었을 때. 나는 P에게 영암 활성산 풍력단지를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곳은 2년전 처음 들렀던 곳으로 200만 평의 드넓은 초원에 들어선 바람개비가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내 기억속에 숨은 명소로 저장된 곳이기도 했다.

풍력발전기에 대한 P와위 대화

P의 장점은 길눈이 밝다는 것이다.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로 유학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남도 지리에 유난히 밝은 P다. 내가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은 강진 성전쪽에서 들어갔는데 P는 영암 구림마을 방면에서 군서쪽으로 길을 가다 영암읍에서 다시 덕진쪽으로 해서 길을 잡는데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마침내 여운재에 다다르니 눈에 익은 카페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서 금정면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오른쪽으로가 활성산이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컸다는 서광목장이 자리잡았던 드넓은 초지에 2013년 조성된 풍력발전단지. 목장을 폐쇄하고 골프장을 만들려 하자 마을주민들은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물론 풍력발전도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생산이란 경제논리에 달리 방법은 없었다.

목장길로 사용되던 소로를 따라 접어드니 얼마 안가 거대한 바람개비가 나타난다. 처음 왔을 때. 그 바람개비가 능선을 따라 수십개가 도열한 기억이 강했던 나는 드문드문 나타나는 바람개비가 왠지 성에 차지를 않는다.

“자네, 여기 바람개비가 몇 기인 줄 아는가?”

“열 네깁니다.”

“???”

P는 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단호하게 답을 한다.

“아니. 그것밖에 안돼? 서른 기도 넘을 것 같던데.”

“열 네 기가 맞습니다. 제가 세어봤습니다.”

요지부동이다. 그러다 차가 또 하나의 능선을 넘으니 길가의 바람개비 기둥에 ‘18’이라고 쓴 글씨가 선명하다.

“아야. 이것이 18번인데 열 네 기가 맞다고?”

“번호야 그럴 수도 있지요.”

다시 또 하나의 능선을 넘어 방향을 좌측으로 돌리자 내리막 능선으로 바람개비가 열지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은 뭔가?”

“아이고. 제가 잘못 봤습니다. 취소할랍니다.”

대단한 P다. 그제서야 P는 이곳이 초행이라는 것, 바람개비도 해남과 광주를 오가는 길에 먼 발치에서 세어본 숫자라는 것. P의 말에 실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단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 가당찮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P의 이런 자신감(?)은 약과다.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또 다른 해남아우 J는 한 술 더 뜬다. 어디를 가봤냐고 물으면 한치의 주저없이 가봤다고 한다. 그것도 서너 차례나 가봤다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보탠다. 적어도 내가 물어본 바에 따르면 국외를 빼놓고는 국내에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참으로 대단한 아집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70년 개띠’ 동갑내기다. 개띠는 대체로 솔직하고 명랑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이 둘은 별종에 가깝다고 할밖애.

<여운재를 넘어 활성산으로>

풍력단지가 들어선 활성산(活城山, 498m)은 정상에 있던 활성산성에서 유래한다. 임진왜란 때 궁성산과 함께 활 쏘는 훈련장이 있었다고 전하며, 토성(土城)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활성산 정상에 서면 월출산과 함께 영암 읍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봄에는 지천으로 피어나는 철쭉으로 유명하다.

활성산은 무등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호남 정맥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월출산으로 뻗어가는 능선에 위치한다. 활성산 동쪽의 영암읍 한대리와 금정면 연소리 골짜기는 탐진강 수계의 유치천이며, 서쪽의 영암읍 농덕리와 장암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영암천이다. 한편 활성산의 세 갈래 능선은 북동쪽은 국사봉을 거쳐 궁성산으로, 북서쪽은 백룡산으로, 남쪽은 월출산으로 이어진다.

지리학의 고전인 신경준(1712~1781)의 ‘산경표(山徑表)’와 더불어 우리나라 산천의 인식체계를 정리한 걸작인 ‘대동수경(大東水經)’을 쓴 정약용(1762~1836)은 ‘강은 산에서 시작된다’고 봤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널 수가 없다. 하지만 산과 강은 하나였다. 이 땅을 가리켜 ‘산하’, 또는 ‘산천’이라 잖은가. 풍수적으로 산은 용(龍)이다. 운무 낀 날. 산정(山頂)에 서 본 사람은 안다. 꿈틀대며 뻗어나간 산줄기가 마치 한 마리의 용과 같다는 것을. 그 용은 강을 범하지 않고 조화롭게 품는 어진 성품을 가졌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활성산에 오르면 이 모든 것이 삼삼하니,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진다.

활성산은 영암읍 동쪽 울타리로 금정면과 경계를 이룬다. 월출산이 화강암이 드러난 거친 악산(岳山)이라면 활성산은 정반대로 바위가 드러나지 않은 육산(肉山)이다. 남쪽의 궁성산이라 하여 ‘남궁성산’이라는 별명이 있다.

활성산 남쪽으로가 강진 옴천면, 동쪽으로가 장흥 유치면이다. 옴천면과 유치면은 강진과 장흥에서도 외지고 험준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명마저 독특한 옴천면은 얼마나 외졌던지 ‘옴천면장 맥주 따르데끼’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이는 거품이 많은 맥주를 단숨에 따라 컵을 채운데서 나온 말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시골면장인지라 손님은 접대해야겠고. 하는 수 없이 짜낸 묘안이 맥주를 급히 따라 거품으로 컵을 채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옴천면은 최고의 젓갈로 ‘개미’를 좌우하는 토하(土蝦)젓의 이름난 산지이다.

명찰 보림사가 있는 장흥 유치면은 산세가 험한 곳이다.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산을 보면 과연 사람이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빨치산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활성산 풍력단지 인근 금정면과 덕진면의 경계를 이루는 여운재(如雲峙,150m)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경찰과 빨치산의 교전으로 얼룩진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특히 여운재 너머 금정면 연보리는 빨치산의 근거지였다. 지금이야 도로가 뚫리고 정돈된 모습이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이 때문에 ‘빨갱이마을’로 낙인찍히며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 또한 금정면 청룡리와 장흥군 유치면을 끼고 있는 국사봉(614m)에는 인민유격대 전남 제3지구인 유치지구 사령부가 주둔해 밤이면 인근마을은 이들의 해방구가 돼 주민들은 가슴을 죄며 살아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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