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아주 우연이었다, 그 바다에 간 것은.

다리가 무너졌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사중인 다리의 상판이 내려앉았다고 했다. 우째 또 이런 일이. 그 다리 이름은 칠산대교라 했다. 영광 칠산바다의 칠산? 점심식사 후에 해남 아우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접하게 된 뉴스. 궁금했다. 그리해서 찾아나선 곳. 영광군 염산면 옥슬리 향화도. 2016년 7월 8일의 일이었다.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찾아간 그곳. 그곳에 칠산타워가 있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무너진 다리보다 그곳에 더 눈이 갔다. 무너진 다리의 전체적인 윤곽도 살필 겸 올라간 타워 전망대. 지상 111미터. 황홀했다. 비스듬히 무너진 다리의 상판마저 마치 칠산바다에 엎드려 예를 갖추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미 경계를 넘어선 풍경.

그렇게 나는 향화도에를 갔고. 칠산타워를 만났다.

<칠산타워 회센터 아짐의 인심에 단골이 되고>

그 후로 나는 네 번이나 더 향화도를 찾았다. 처음 갔을 때 들렀던 타워 회센터의 맨 앞쪽 횟집은 단골이 됐다. 바다 건너 무안 해제 도리포에서 배를 타고 시집을 왔다는 사람좋은 횟집 아짐(아주머니). 횟감이 떨어졌으면 옆집에서라도 기어코 구해다 주고. 과일이나 밑반찬, 심지어는 과실주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인정.

지난 5월말쯤이었다. 병어 생각이 나서 병어회를 먹으러 산지인 신안 송도에를 갔다가 한 마리에 이만 오천 원이라는 말에. 짐작은 했지만 비싸다는 생각에. 같이 간 해남 아우 J에게 향화도로 가자고 했다. 그 길은 멀었다. 갔던 길을 돌아 지도~해제~현경을 거쳐 함평으로 돌아 손불~염산으로 가는 길. 해제에서 77번 국도로 갈아타고 도리포로 가서 칠산대교를 건너면 잠깐일 길을. 그렇게 돌아서가야 했다. 24번 국도인 이 길은 그러나 예전 섬이었던 곳으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 다행히 지루하지는 않다.

그렇게 향화도에 도착해 회센터로 들어서니 아짐이 반긴다.

“어서 오세요.”

“병어 있나요?”

“오메 으짜쓰까. 다 떨어졌는디. 미리 전화라도 주시지 그랬어요.”

인사는 건성이고 다짜고짜 병어부터 찾는 내게, 반씩 섞인 말투가 친근감을 더해주는 아짐. 그러더니 옆집 아짐더러 병어가 있냐고 묻는다. 그렇게 병어를 한 접시 썰고. 또 다른 집에서 삶은 소라를 한 접시 주문해서 단골 아짐 집에 자리를 잡는다. 당신 물건은 하나도 팔아주지 않아도 그저 반가워하는 아짐. 오디주라며 술까지 내주고. 밑반찬도 이것저것 챙겨주고. 손님이 사온 거라며 박스를 뜯고 토마토까지 꺼내준다. 그런 인정이다.

칠산타워는 2012년 5월 착공해 2016 2월 준공한 뒤 8개월간의 시범 운영을 마치고 10월 11일 공식으로 개장했다. 그러니까 개장도 하기 전에 칠산대교의 붕괴사고로 생각지도 않은 눈 맛을 보게 된 것이다. 타워 1~2층에는 활어와 선어 등 수산물 판매장과 향토음식점이, 3층 전망대에서는 칠산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어 노을 전시관이 있는 백수해안도로와 함께 영광 관광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새천년대교 등 서남권 5대 SOC사업이 마무리 되고, 이곳에서 압해도까지 연결하는 칠산대교가 2019년 개통될 경우. 칠산타워는 서남권 관광객 1천만시대를 앞당기는데 톡톡히 한몫을 해낼 것이다.

‘영광 8괴’를 아시나요?

지금은 옛 말이 되었지만 칠산바다는 조기잡이로 유명했다.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는 보리가 푸르게 피어나는 4월 곡우(穀雨)때 잡히는 것을 최고로 쳤다. ‘곡우 사리’라고 불렀다. 이맘때쯤 조기는 떼를 지어 남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회유한다. 조기가 산란을 위해 동지나해에서 서해안을 따라 북상해 연평도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 중간에 태안반도, 변산반도 등에서 조기가 많이 잡혔다. 즉 흑산도 아래 바다에서 겨울을 지낸 조기가 곡우 즈음이면 칠산 어장에서 서해안의 고군산열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때 산란 직전에 잡히는 조기를 '곡우 사리'라 불렀다. 당연히 조기 파시가 열리던 시절 칠산바다에는 돈도 흔했다.

‘돈 벌러 가자 돈 벌러 가자/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자/ 어기 여차 어기 여차...’

이 노래는 그물의 조기를 털면서 부르던 노동요였다.

‘칠산(七山)’이라는 이름은 칠산도에서 유래한다. 백수읍 하사리에 있는 칠산도는 본래 낙월면 송이리에 속했다. 실제로는 6개의 섬이나 썰물 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보면 7개로 보여 이 섬을 ‘뜬 섬(浮島)’으로 부르는데 밀물이나 썰물이나 높이가 같아 ‘영광 8괴(怪)’의 하나로 꼽힌다. 이와 같이 영광에는 8개의 괴이쩍은 명소가 있다. ‘8괴’라는 뉘앙스가 그렇듯 대부분이 ‘전설의 고향’과 같은 류(類)로 재미삼아 적어본다.

백수읍 죽사리(竹寺里) 대절산에 화미(火米)라고 불 탄 쌀이 나왔던 구멍이 있다. 백수읍 상사리와 하사리에 걸쳐 있는 모래 등성이를 ‘풍목새(風沙)’라 부르는데 쌓인 모래가 바람에 날려 다 없어진 듯하나 여전히 그대로다. 불갑면 거무리 철마산 정상에 쇠말이 있어 집에 갖고 가 궤짝에 담아 하룻밤 자고나면 도로 제자리로 가 있었다. 일인이 훔쳐갔다.

홍농읍 계마리 금정암 동쪽 샘에서 금물이 나와 ‘금정(金井)’이라 한다. 염산면 월평리 백초(白草)섬 나각(螺殼, 조개껍질 모듬). 조개껍질이 불에 타 회(灰)가 되어 쌓였는데 소금 굽는 항아리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실어내도 잠깐사이 다시 쌓여 그 모듬이 전과 같았다. 염산면 야월리에 하루 두 번씩 남쪽과 북쪽물이 합수하는데 남쪽은 맑은 음수, 북쪽은 탁한 양수다. 해서 ‘음양수(陰陽水)’라 불렀으나 가음방조제가 축조된 후 지금은 염전으로 변했다.

대마면 남산리 태청산 상봉. 바위위에 큰 가마만한 돌이 떠 있는데 큰 노끈이 통과할 정도다. 이 바위는 새가 앉아도 돌 소리가 ‘딸깍’ 사람이 앉아도 ‘딸깍’. 그러나 다시 앉으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또 이 돌은 새끼줄로 묶어 당기면 움직이지만 손으로 밀면 안 움직인다. ‘부석(浮石)’이라고 한다.

‘영광(靈光)’은 이름 그대로 ‘신령스런 빛’이 감도는 고장이다. 일찍이 백제시대 법성포를 통해 불교가 들어왔고. 1916년에는 백수읍 길룡리 태생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며 현대적 불교인 원불교를 창시했다, 길룡리에는 원불교 제 1성지인 영산성지가 있다. 또 전남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로 알려진 영광읍 영광성당 옆 신유박해 천주교 순교지와 6.25 전쟁 때 한국 기독교 사상 가장 많은 77인의 순교자를 낸 염산면 봉남리 설도마을 염산교회에는 기독교 순교지가 있다. 말하자면 영광은 4대 종교 문화유적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성스러운’ 고장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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