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5(상)-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만난 ‘하얀 나비’ 김정호, 그리고 판소리 명창 박동실
[이해덕의 南道春風] 5(상)-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만난 ‘하얀 나비’ 김정호, 그리고 판소리 명창 박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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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문득 그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가 담양에 있다고 했다. 알 수 없는 끌림. 그를 만나야겠다. 유난히 낯을 가렸던 청년. 무작정 방문에 만남을 허락해 줄까. 비가 종일 오락가락하던 주말. 아무런 기별도 없이. 무작정 그를 만나러 담양 땅을 밟았다.

단언하건대 담양은 남도 풍류의 일번지다.

명창 임방울이 즐겨 불렀던 ‘호남가’를 보자.

‘-백리담양(百里潭陽) 흐르는 물은 구부구부 만경(萬頃)인데/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며/ 능주(綾州)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인가-’

백리담양 흐르는 물이라 했다. 담양 추월산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제일 먼저 담양 백리를 적신다. 특히 발원지에서 광주 신창지구에 이르는 백오십 리 물길을 극락강이라고 부른다. 이 강으로 담양의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든다. 이 가운데 증암천이 흐르는 남면과 고서면 일대로는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환벽당, 소쇄원, 명옥헌 등 유서깊은 누정과 원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 창평 땅이다. 당연하게도 조선의 내로라하는 시인묵객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가사(歌辭)문학, 즉 ‘계산풍류(溪山風流)’를 낳았다. 이런 내력으로 사람들은 ‘광나장창’이라고 불렀다. 호남의 문장은 광주와 나주, 장성, 창평이라는 얘기였다. 이를 기념하는 한국가사문학관이 2000년 10월 남면 지곡리에 문을 열었다.

장성, 화순과 함께 광주권인 관계로 담양은 무엇보다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다. 호남, 남해, 88고속도로의 교차점으로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 여기에 담양의 대표 상품인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를 극대화시켜 문화생태도시를 내세운 가로수길과 죽녹원, 관방제림 3종세트가 관광객들의 눈높이와 맞아 떨어졌다. 일약 남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떠오른 것이다. 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7 봄 여행주간'인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4일까지 주요 관광지 46곳의 관람객 현황을 조사한 결과, 담양 죽녹원이 18만3820명을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김정호와 만나는 공간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 중간쯤 가면 호남기후변화체험관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로 나가면 된다.

먼 발치로 그가 보인다.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치는 모습.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우수(憂愁)가 깊게 배어 있다.

생전에 김정호는 이런 말을 했다.

“(미제) 청바지를 한 번 입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병상에 그를 취재하던 한 주간지 기자는 이러한 김정호의 소원을 기사화했다. 그 주간지는 아마 ‘선데이서울’이었을 것이다. ‘선데이서울’은 ‘주간경향’, ‘주간국제’와 함께 당시 대표적인 주간지였다. 이들 주간지는 ‘핀업 걸’로 비키니 수영복을 입힌 연예인들을 경쟁적으로 내세웠다. ‘역치(閾値, 외부의 자극에 대한 말초신경의 반응지수) 상승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의

시각으로 본다면 지극히 점잖은(?) 사진일 수도 있겠으나. 그 때는 달랐다. 요즘말로 ‘심장이 쫄깃해지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남들이 볼까봐서 대놓고 보지도 못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주간지를 어디서 봤을까. 아마도 내가 가던 단골 미장원에서였을 것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젊은 남자들이 미장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금기시됐던 파마도 유행했다. 주로 핀컬 파마였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김정호가 소원했던 청바지는 어떤 청바지였을까. 그것은 ‘구제품’이라 불리던 미제 청바지였을 것이다. 당시 청바지로는 ‘쌍마표’와 ‘빅스톤’이 유명했다. 말 두 마리가 그려져있어 ‘쌍마표’로 불린 리바이스 청바지와 콧수염이 매력적인 찰스 브론슨이 입은 광고로 유명한 빅스톤.

7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그가 소원한 것인 고작 청바지였다니. 그의 지극히 소박한 희망이 담긴 기사여서일까. 이상하게도 그 기억은 오래갔다.

그렇다면 김정호는 왜 담양에 있는 걸까. 여기에는 그의 외가와 깊은 연관이 있다.

본명이 조용호인 김정호의 출생지는 북동성당 뒤편인 광주시 북동 40번지다. 외조부가 살던 이 집에서 김정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담양은 그의 외가다. 그의 외조부가 담양 금성면 대관리 태생(담양읍 객사리라고도 하나 나중 이곳으로 이주한 듯)인 명창 박동실(朴東實, 1897~1968)이다. 6.25때 월북함으로써 빛이 바랬지만 박동실의 가계(家系)는 대단한 소리꾼 집안이다. 박동실은 어려서 외조부인 배희곤과 부친 박장원에게 소리를 익혔다. 두 분 다 명창이었다. 딸인 박숙자(김정호 모친)와 동생 박영실 또한 명창이었고. 박영실의 아들인 조카 박종선은 아쟁의 명인이다.

박동실은 1930년대 중반 박석기를 만나면서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박석기는 담양 출신의 지식인으로 거부였는데, 담양군 창평면 지실마을(남면 지곡리)에다 집을 짓고 예인들을 불러 교육을 하였다. 이때 박동실이 소리꾼을 지도하는 선생으로 초빙돼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김소희, 한승호, 임춘앵, 한애순, 장월중선 등이 모두 이 때 박석기의 초당에서 소리 공부를 했다. 박석기는 자신이 거문고 명인기도 했는데, 거문고의 명인 한갑득이 바로 그의 제자다.

벅동실은 해방을 전후해 전남을 대표하는 소리꾼이었다. 그러나 조상선, 공기남 등과 월북을 하며 빛이 바랬다. 그의 제자들은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는 사회분위기로 스승을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고. 박동실의 소리는 크게 쇠락하고야 만다. 세월이 흘러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해금(解禁) 등으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담양군은 지곡리 가사문학관 경내에 ‘명창 박동실 기념비’를 건립했다.

어려서 외가가 있던 담양읍 객사리에서 자란 김정호는 여섯 살 무렵 판소리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모친은 아들이 소리꾼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집안에 있던 국악기들을 모두 내다버릴 정도로 완강했다. 아들만큼은 더 큰 세상에서 커야 한다며 광주 수창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모친의 기대와는 달리 김정호는 음악에 빠져든다. 고등학교(대동상고)는 건성이었고. 서울 우이동 집에 틀어박혀 기타를 치며 오선지와 씨름을 했다. 가수를 꿈꾸며 1970년 파주 장파리 미8군 클럽으로 진출한 김정호. 그런데 클럽의 분위기는 내성적인 그에게는 영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나마 그때 만난 어니언스의 임창제는 그의 음악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됐다. 그동안 틈틈이 써온 곡들을 임창제에게 주었고, 이 곡들은 어니언스를 통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사랑의 진실’, ‘작은새’, ‘잊으리라’, ‘외길’, ‘저 별과 달을’이 그것으로.임창제는 이 곡들이 김정호의 곡이라고 밝혀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후로는 순조로웠다. 1973년 발표한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가 큰 인기를 끌면서 단숨에 인기가수의 반열에도 올랐다. 오늘날 그의 수식어가 된 ‘하얀 나비’는 ‘도·레·미·솔·라(궁·상·각·치·우)’라는 국악 음계로만 작곡했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남도 판소리에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연예계를 초토화시킨 1975년의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며 그는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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