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서 건강 악화로 별세
한일서 손꼽히는 사업가…국내 산업 발전 선도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 등은 '옥의 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사진=롯데그룹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사진=롯데그룹

[비즈월드] '유통 거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파란만장한 '99년 인생사(史)'를 뒤로 하고 역사로 남게 됐습니다.

롯데그룹과 재계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19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아산병원에서 건강 악화로 별세했습니다. 지난 18일 밤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신 명예회장의 가족과 그룹 주요 임직원들이 만일에 대비해 병원에 모였으며 일본 출장 중이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급히 귀국했습니다.

결국 신 명예회장은 19일 오후 눈을 감았습니다.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한일 롯데를 이끌며 롯데그룹을 국내 재계 5위로 이끈 거인인 신 명예회장이 숨을 거두면서 우리나라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등에 걸쳐 대기업을 일궈낸 우리나라 대표 기업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입니다.

신 명예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나 1941년 만 19세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에게 5만 엔을 투자받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불타 투자금은 그대로 빚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우유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며 사업자금을 마련했습니다.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를 세워 비누 등을 만들며 빚을 갚아 나간 그는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설립, 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미군들의 영향으로 인기가 많던 껌이 잘 팔리면서 사업 성공을 거둔 신 명예회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인 '롯데'의 간판을 내걸며 한일 롯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껌에 이어 초콜릿 사업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그는 캔디·비스킷·아이스크림·청량음료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롯데를 종합 식품회사로 키웠습니다.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한 신 명예회장은 1967년 한일 수교가 이뤄지자 곧바로 조국인 한국에 투자를 하며 한국 롯데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1974년 칠성한미음료, 1977년 삼강산업 등 공격적인 인수와 투자는 물론 1973년 롯데호텔과 1979년 롯데쇼핑을 설립하며 유통과 관광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1978년 평화건업사와 호남석유화학을 사들이며 건설과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한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의 리더십 아래 1980년대 고공성장을 지속했습니다. 여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롯데월드를 오픈하고 롯데면세점, 코리아세븐, 롯데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결국 롯데그룹은 현재 매출 83조원 재계 순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신 명예회장 역시 19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9위에 올랐으며 관광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점을 높이 평가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런 점 등으로 신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한 자수성가 사업가이자 국가 산업 발전에 열정을 쏟은 경영자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던 한국 유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동시에 관광·면세 등 관련 산업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다만 독단적으로 전권을 휘두르는 '황제 경영'과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은 '옥의 티'로 남았습니다.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폐쇄적인 지배구조와 이로 인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점은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부 지분만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다는 '손가락 경영'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경영권 분쟁으로 신 명예회장은 씁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다툼과 불명예 퇴진을 했다는 점은 물론 정신건강에 문제가 드러나면서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까지 뒀습니다.

신 명예회장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그리고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 등이 있습니다. 동생으로는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씨, 신선호 산사스 사장, 신정숙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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