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월드] LG그룹 2대 회장으로 1970년 45세 때부터 25년간 그룹을 이끌며 '글로벌 LG' 신화를 써내려간 구자경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향년 94세) 했습니다. '참 기업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구 명예회장을 기리는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진주사범을 졸업한 그는 부산 사범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50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며 그룹 경영에 합류했습니다.

다른 총수 일가와 달리 구 명예회장은 공장에서 현장 수업을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구인회 회장을 만류했지만 구인회 회장은 "대장간에서는 호미 한 자루도 담금질로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과 같다"며 구 명예회장에게 진정한 경영수업을 경험하게 가르쳤습니다.

현장에서 실력은 쌓은 구 명예회장은 1969년 구인회 회장이 별세 한 다음 해인 1970년 LG그룹 회장을 맡아 25년간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안정과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을 유지하며 연매출 270억원이던 그룹을 퇴임 당시 연매출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한국 경제 고도성장기에 맞춰  범한해상화재보험과 국제증권, 부산투자금융, 한국중공업 군포공장, 한국광업제련 등을 인수했고 럭키석유화학(1978년), 금성반도체(1979년), 금성일렉트론(1989년) 등을 설립했습니다. 8개에 불과하던 계열사는 구 명예회장의 손을 거치며 30여 개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LG를 '한국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LG전자와 LG화학의 해외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발판을 마련한 후 중국과 미국은 물론 동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으로의 진출을 추진했습니다. 1982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세운 컬러TV 생산공장은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LG의 기본이 되는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에도 매진했습니다. 구 명예회장 회장 재임 기간 설립된 국내외 연구소만 해도 70여 개에 달합니다. 이는 연구개발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의 뿌리가 됐고 LG그룹은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구 명예회장은 선진화 된 경영체제를 정착시키며 참 기업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을 벗어던지기 위해 1988년 '21세기를 향한 경영 구상'을 발표한 후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권한을 이양하는 '자율 책임 경영체제'를 확립했습니다. 당시 이례적으로 '투명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민간기업 최초로 락희화학 기업공개를 실시한 것은 그의 최대 업적으로도 남았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겼습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닦은 후 은퇴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 교육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여하며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면서 된장과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구 명예회장의 장례 역시 그가 평소 몸소 실천한 소신대로 소탈과 겸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장례는 생전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집니다. 유족들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빈소를 마련했지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빈소에는 고인의 차남으로 상주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구본식 LT그룹 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손자인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자리했고 권영수 LG그룹 부회장 등 주요 임원들도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헌신과 그가 남긴 업적을 기리는 이들은 구 명예회장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GS그룹 회장을 지낸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시작으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 등이 다녀갔습니다.

구 명예회장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17일 오전입니다. 고인은 화장 후 안치될 예정이며 유족들은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장지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지난해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