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21(상)-"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의 섬', 신안 안좌도와 '소작쟁의'의 역사가 깃든 암태도
[이해덕의 南道春風] 21(상)-"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의 섬', 신안 안좌도와 '소작쟁의'의 역사가 깃든 암태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회상(回想)

사진 속에는 회색 코트를 입은 키가 크고 안경을 낀 선한 인상의 사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자그마한 키에 역시 안경을 낀 당찬 모습을 한 검은 코트 여인과 어디론가 길을 재촉하듯 걸어가고 있다.

내가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오래전 나와 S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는 묘한 기시감(旣視感)에 사로잡혀 순간 가볍게 전율했다. 우리가 돈암동 삼선교나 대학로, 또는 종로를 걸을 때면 동행한 친구들은 언밸런스하면서도 시크하게 조화를 이루는 우리를 보고 매력적인 조합이라고 덕담을 건네고는 했다. 물론 거기에는 S의 탁월한 미적 감각이 한 몫을 했겠지만.

이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으로 우리 보다 20년에서 30년가량 앞서 눈 익은 포즈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진 속 동행은 바로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 그의 아내 김향안(金鄕岸, 1916~2004)이었던 것이다.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수화와 향안.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이들만큼 극적으로 맺어진 커플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두 명의 천재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김향안의 인생역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변동림으로 시인 이상을 만나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고. 세 딸을 둔 홀아비였던 수화와는 김향안으로 살다 갔다. ‘향안(鄕岸)’은 본래 수화의 아호였다. 수화는 고향인 신안 기좌도의 바닷가 언덕을 그리며 ‘고향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수화를 만나며 변동림에서 새로운 변신을 꿈꿨던 그녀에게 수화는 자신의 아호를 선물했고, 그녀는 수화의 성(姓)까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환기는 해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국내 작가 가운데 최고가를 경신하는 화가다. 말하자면 국내 화단의 지존(至尊)과도 같은 화가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 화단에 추상화를 처음 선보인 화가로 알려진 그의 1938년작 ‘론도(Rondo)’는 화순출신 오지호의 ‘남향집(1939년작) 등과 함께 2013년 등록 문화재로 지정됐다. 한국 전통의 미에 서구의 모더니즘을 결합한 화풍을 선보이며 추상미술의 선구자, 또는 한국 현대미술의 좌표(座標)로 평가받는 김환기. 친구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인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5)는 그를 가리켜 “한국의 멋을 폭넓게 창조하고 멋으로 세상을 살다간 예술가”라고 말했다.

김환기의 고향은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그가 태어나 성장기를 보낼 때만 해도 기좌도(箕佐島)라 불리던 섬이었다. 그러나 간척사업으로 동쪽의 안창도(安昌島)와 연결되면서 1917년 안좌도(安佐島)가 됐다. 안좌도에는 1926년 백두산에서 실어온 목재로 지었다는 ㄱ자형 북방식 한옥인 김환기 생가가 있다.(실제 태어난 곳은 생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기좌도 부농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환기의 유복했던 성장기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생가는 강진의 김영랑 생가(제252호)와 함께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251호로 지정됐다.

김환기의 안좌도는 신안군 ‘다이아몬드제도(나주군도·羅州群島)’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안좌도는 북쪽으로 팔금도와 암태도, 자은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어 이들 4개의 섬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권역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 섬들은 관광지로 유명한 흑산·홍도권, 비금·도초권, 지도·임자·증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김환기에 대한 미술계의 재평가와 뜨거운 관심으로 인해 생가마을인 읍동리를 중심으로 미술애호가들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데다 이들 섬의 접근성이 다른 신안의 섬들보다 뛰어나 관광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제도(諸島)

신안의 섬들은 알고 나면 대개는 지척간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는지 모르겠으나 어지간한 수영 실력이면 헤엄을 쳐서 이 섬 저 섬으로 왕래가 가능할 것만 같은 거리에 섬들이 놓여있다. 그런 까닭에 웬만한 섬들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지금 신안군청이 있는 압해도는 목포에서 압해대교로 연륙이 돼 있다. 섬이지만 더 이상 섬이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압해도는 ‘김대중대교’로 무안 운남면과 연결돼 무안공항이나 광주로의 진출입이 자유롭다. 나아가 압해읍 송공항에서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새천년대교)'가 내년 초 개통되면 신안의 섬들은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맞게 될 것이다.

천사대교는 신안의 ‘다이아몬드 제도(諸島)’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다이아몬드 제도의 동북권 4개 섬인 암태도외 팔금도, 자은도, 안좌도는 이미 연도교로 연결돼 있고. 비금도와 도초도, 그리고 하의도와 장산도까지. 25개 섬들을 모두 26개의 다리로 연결함으로써 육지에서 자동차로의 진입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제도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밀조밀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 신안의 섬들이다. 섬들의 고장인 신안군은 이를 의식한 듯 '1004의 섬‘이라는 수식어로 신안을 홍보하고 있다. ’1004‘는 신안의 섬 숫자이며 ’천사(天使)‘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실제 신안의 섬들은 이에 훨씬 못미치는 유인도 111개, 무인도 719개 등 모두 830개다.

#모순(矛盾)

지금은 송공항에서 도선으로 수시로 닿을 수가 있지만 천사대교가 개통되면 다이아몬드 제도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섬, 암태도(岩泰島)는 ‘소작쟁의’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1923년에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 사건은 전남지역 최초의 농민운동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63-8 (삼창프라자빌딩) 1226호
  • 대표전화 : 070-8955-2580
  • 팩스 : 070-8955-2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봉호
  • 법인명 : 주식회사 비즈월드미디어
  • 제호 : 비즈월드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586 (사업자등록번호 339-81-01207)
  • 등록일 : 2017-06-21
  • 발행일 : 2017-08-01
  • 발행인 : 최순희
  • 편집인 : 최순희
  • 비즈월드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비즈월드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bizw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