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진=픽사베이 캡처
참고사진=픽사베이 캡처

[비즈월드] 캐논(Canon)은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무르익던 1937년 설립됐습니다. 원래 캐논이라는 이름은 회사의 전신인 정기광학연구소에서 개발 출시한 첫 카메라 이름 ‘칸논’에서 따 온 것입니다. 이때가 1933년.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해이며 국제연맹이 만주국을 부인하자 연맹을 탈퇴한 해기도 합니다.

당시는 일본 자본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으니 캐논은 일본의 자본주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 온 셈입니다. 특히 일본 제조업의 특장점인 정밀 공업 부문에서 캐논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캐논은 설립 초기에 광학유리를 제조합니다. 처음 만든 제품이 오늘날의 니콘에 납품했던 ‘Nikkor’ 렌즈입니다. 니콘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설립됐습니다. 캐논이 제조해 니콘에 납품한 렌즈는 니콘의 광학카메라 호환렌즈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디지털카메라의 출현 전까지도 시장에 공급됐습니다.

니콘과 함께 캐논은 일제 카메라의 역사를 써 나갑니다. 최초의 산업용 엑스레인 카메라를 제조했고 TV 방송용 줌렌즈도 개발 선보였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세계 최초로 영화 카메라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무실에서 널리 쓰이는 잉크젯 프린터는 1980년대 초반 캐논이 세계 처음으로 출시했습니다. 잉크젯 프린터에 대한 특허는 거의 대부분을 캐논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잉크젯 프린터를 제조하는 메이커들은 캐논에 특허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광학기계 전성시대에 일본에서 카메라는 니콘이, 프린터는 캐논이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다양한 경쟁사들이 있었지만 이들 두 회사의 아성은 굳건했습니다. ICT 산업이 본격화되고 모든 산업에 디지털 바람이 일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디지털 시장이 열리면서 캐논은 카메라 부문에서 다시 큰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축적된 광학기술과 렌즈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카메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EOS 카메라는 최고의 히트작이었습니다. 현재 디지털 카메라 부문에서 니콘은 고가품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시장 전체의 리더는 아닙니다. 대중성 있는 디지털 카메라 제품은 캐논과 소니가 이끌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캐논은 지금도 카메라와 프린터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HP 등 경쟁사도 막강하지만 캐논의 위상이 흔들릴 정도는 아닙니다. 캐논의 2017년 결산 기준 매출액은 361억 달러(한화 약 42조원), 순익 21억40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을 기록했으며 20만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광학기기 분야에 특화된 기업으로서는 대단한 규모임에 틀림없습니다.

캐논의 기업DNA. 그림=캐논 홈페이지 캡처
캐논의 기업DNA. 그림=캐논 홈페이지 캡처

미래에 대한 준비도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캐논은 앞으로의 성장 동력을 4개 부문으로 설정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 ▲네트워크 카메라 ▲대형 상업용 프린팅 ▲산업용 장비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 4개 분야도 캐논의 광학 및 프린팅 주력 기술이 접목되고 있습니다. 이미 상품화된 기술도 많으며 시장 점유율 또한 점차 높여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캐논 성장세의 배경에는 한 우물을 파며 굳게 다져진 R&D 역량이 있습니다. 카메라 렌즈나 프린터 등 관련 분야의 특허 자산에 관한 한 캐논을 능가할 기업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듯합니다.

캐논의 현재 기술경쟁력등급(TCG)과 기술력점수(TSS).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의 현재 기술경쟁력등급(TCG)과 기술력점수(TSS). 표=위즈도메인 제공

특허 분석 전문 위즈도메인이 분석한 캐논의 특허 자산 기반 기술력 평가 등급은 ‘AAA’입니다. 글로벌 경쟁사를 모두 포함해 0.1% 내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영역에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캐논이 확보하고 있는 특허는 캐논의 사업과 직결되는 연구개발 등 자회사를 포함해 8만5000개를 넘습니다. 관계사까지 포함하면 10만개를 웃돕니다. 기사의 성격이 글로벌 경쟁력을 분석하는 것인 만큼 일본에서만 적용된 특허는 일단 배제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주도국에 등록된 특허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위즈도메인에 따르면 시효를 다해 공개됐거나 권리를 상실한 특허를 제외하고 캐논이 미국에서 갖고 있는 유효특허만도 5만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캐논이 출원한 특허 동향과 동종 분야 30개 기업평균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지난 10년간 캐논이 출원한 특허 동향과 동종 분야 30개 기업평균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그렇다면 캐논의 최근 특허 출원 동향은 어떨까요?

최근 10년 동안 캐논은 매년 350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해 왔습니다. 지난 2009년 3407건의 특허를 출원한 캐논은 이듬해인 2010년에 3633건을 기록했고 연이어 ▲2011년 3679건 ▲2012년 3875건 ▲2013년 4065건 ▲2014년 3727건 ▲2015년 3914건 ▲2016년 3580건 ▲2017년 3194건의 신기술을 출원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글로벌 30대 경쟁사들의 사당 평균 출원 수는 매년 1000건 내외에 머물렀습니다. 캐논의 특허 출원이 경쟁사 대비 3.8배 이상 많았습니다.

지난 10년간 캐논이 등록받은 특허 동향과 동종 분야 30개 기업평균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지난 10년간 캐논이 등록받은 특허 동향과 동종 분야 30개 기업평균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등록된 특허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냅니다. 2010년 2575건의 특허가 등록됐으며 2011년에는 2856건으로 약 10% 증가하게 됩니다. 증가세는 매년 이어져 ▲2012년 3205건 ▲2013년 3874건 ▲2014년 4119건 ▲2015년 4191건으로 정점을 찍게 됩니다. 그 뒤 소폭 감소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적으로는 3000건 이상을 유지해 ▲2016년 3714건 ▲2017년 3349건 ▲2018년 3126건이었고 올해 들어서도 1월 초순까지 127건의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경쟁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매년 800~1050건 수준이었습니다.

아래의 사분면 분석차트는 CANON KK의 주요 기술부문별 집중도 및 기술 수준 비교. 수평축은 해당 기업의 특허평가 평균점수(APES)를 나타내고, 수직축은 등록특허 수를 나타낸다.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의 주요 기술부문별 집중도 및 기술 수준 비교. 수평축은 해당 기업의 특허평가 평균점수(APES)를 나타내고, 수직축은 등록특허 수를 나타낸다.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이 미국에서 출원한 특허와 등록 받은 특허는 IBM과 삼성전자에 이어 3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IBM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허 공룡입니다. 삼성전자 또한 종합 전자제품 및 부품 메이커로서 2위가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캐논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3위라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의 기술개발 집중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반증하는 일이며 그만큼 경쟁사에 비해 기술력에서 큰 격차를 벌리며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재 캐논의 권리가 유효한 특허의 기술부문별 특허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현재 캐논의 권리가 유효한 특허의 기술부문별 특허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권리가 유효한 특허 가운데 캐논이 최근 10년 동안 확보한 특허자산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보면 캐논의 사업 영역이 확연하게 구별되어 드러납니다.

먼저 특허 분류상 ‘복사기’ 부문이 5877건으로 전체의 17.43%를 차지해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카메라와 관련된 ‘사진기’는 1342건으로 3.98% 점유율입니다. 상대적으로 사진기의 지식재산권 비중이 낮습니다. 이는 사진기의 매카니즘이 다른 기계 장치처럼 복잡하지 않은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복사기 및 사진기 두 영역과 관련된 주변 특허 확보 현황을 살펴보면 주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프린팅기구 부문은 2973건으로 8.82%이며, ICT 기업이라면 예외 없이 적용되는 특허 분야인 디지털 데이터 처리가 4219건으로 12.51%의 비중, 데이터 인식이 2684건으로 7.96%를 차지합니다. 이들은 모두 복사기와 직결되는 특허 영역입니다.

다음으로 화상통신 관련 특허는 5787건으로 17.15%를 차지해 복사기 영역 특허와 비슷한 비중입니다. 광학장치의 경우 1473건, 3.98%였습니다. 이 두가지는 복사기와 사진기 모두에 적용되는 특허 영역입니다.

결국 캐논의 사업은 프린터와 카메라를 주축으로 하며 이 두 제품의 기술이 결합된 다른 연관 분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복사기 영역 특허 기술력은 글로벌 1위로서 탄탄한 지위입니다. 그 뒤를 리코, 브라더 코교, 제록스, 후지제록스, 도시바, 샤프, HP 등이 잇고 있습니다. 화상통신 부문도 캐논이 1등입니다. 이어 소니가 2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삼성전자, LG전자, 도시바, 파나소닉,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후지필름, 리코가 이었습니다. 프린팅 기구의 경우 세이코앱슨이 2위의 캐논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3위는 브라더 코교, HP, 후지제록스, 도시바, 샤프 등의 순위를 나타냈습니다.

캐논의 특허 워드클라이드.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의 특허 워드클라이드. 표=위즈도메인 제공

이런 결과는 캐논이 확보하고 있는 특허 자산의 키워드만 파악해도 나타납니다. 캐논이 확보한 특허 자산의 제목에 표시된 핵심 키워드를 분석해 보니 ‘카트리지’가 가장 많았습니다. 카트리지는 쉽게 말해 잉크를 담아 이동하며 종이에 인쇄하는 부품입니다.

또한 주요 키워드로는 ‘잉크’, ‘드럼’, ‘포밍’, ‘레코딩’, ‘컨테이너’, ‘시트’, ‘리퀴드’ 등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프린터와 관계된 용어입니다. 또는 카메라에서도 응용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캐논의 최근 10년 동안 국가 별로 출원 특허 건수.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의 최근 10년 동안 국가 별로 출원 특허 건수. 표=위즈도메인 제공

글로벌 기업답게 캐논은 세계 전반에 걸쳐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미국에 3만6877건을 출원, 본사가 속해 있는 일본의 3만1529건 보다 5000여 건 많습니다. 글로벌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지식재산권 경영을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논이 미래에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중국으로 보입니다. 중국에 1만1023건을 출원해 다른 어떤 글로벌 기업보다 많은 건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럽에도 5507건을 출원했으며 한국에도 4040건을 출원해 5번째로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경쟁사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지식재산권 선 확보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밖에 40여개국에 적게는 수십건에서 수백건의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캐논의 최근 5년간 특허 소송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의 최근 5년간 특허 소송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지난 2000년대 초반 캐논과 삼성간 특허 분쟁은 당시 국내 IT업계에서 화두였습니다. 캐논이 삼성전기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삼성전기는 캐논 레이저프린터의 토너카트리지와 호환되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전자상가에서는 재생 카트리지가 대거 유통됐습니다. 이를 캐논이 문제 삼고 나섰던 것입니다. 결과는 캐논의 승소였습니다. 캐논 상품이 오피스용이면서 개인용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캐논은 항상 특허 침해 소송으로 편할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캐논은 지난 2015년, 8개사로부터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피소됐으며 이를 포함해 작년 말까지 4년 동안 총 19개사로부터 피소됐습니다. 적지 않은 건수입니다. 사무기기의 경우 특허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본의 아니게 벌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지난해 캐논은 무려 41개 회사를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제소했습니다. 근래 가장 많은 제소 건수를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캐논과 특허 포트폴이오가 비슷한 상위 20개 업체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캐논과 특허 포트폴이오가 비슷한 상위 20개 업체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모든 특허 자산을 점수로 환산한 특허기술력 평가 면에서 캐논은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와 컴퓨터, 통신기기 쪽의 특허가 워낙 많기 때문에 캐논과 지식재산을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캐논의 기준에 맞추어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공통 영역의 기술력은 캐논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결국 종합점수는 삼성전자가 1위이지만 캐논의 사업영역만 놓고 보면 캐논의 벽은 삼성전자도 넘기 쉽지 않습니다.

캐논의 뒤로는 익히 알고 있는 기업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3위에 마이크로소프트, 4위에 소니, 5위에 도시바가 랭크됐고 6위는 파나소닉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애플, 세이코앱슨, 구글, 리코 등이 위치했습니다. 이 분야에는 톱 10에 일본 기업이 6개사나 들어가 있습니다. 일본의 관련 분야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삼성전자가 카메라와 프린터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 점유율 기준 5대 메이커에 들어갔던 카메라 사업을 철수하게 됩니다. 같은 해 삼성전자는 프린터 사업도 HP에 매각합니다. 이로써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캐논과 경쟁할 회사는 없어진 것입니다.

경영 승계와 맞물려 수익이 안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버리고 간다는 방침, 기술적인 난제 등 이유는 여러 가지 이었겠지만 30년 이상 개발해 왔던 자산을 한순간에 포기한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과연 이것이 한국의 기술과 경제력을 상당부분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의 태도로 올바른 것 이었는가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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