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20(상)- "서울에 북악(北岳)이 있다면 호남에는 남악(南岳)이 있다."
[이해덕의 南道春風] 20(상)- "서울에 북악(北岳)이 있다면 호남에는 남악(南岳)이 있다."
  • 이해덕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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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2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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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허브(HUB)를 꿈꾸는 전남도청소재지 '무안 남악신도시'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요즘 시중에는 이러한 말들이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것이고. 그 다음은 불쌍한 대통령이, 또 그 다음은 쫓겨나는 대통령이, 그리고 그 다음엔 나라를 부강케 하는 성군이 나올 것이다.’

참언과도 같은 이 말은 당대의 명풍수이자 명관상으로 꼽혔던 청오(靑奧) 지창룡(池昌龍, 1922~1999)이 김영삼 정부 시절 출간한 수필집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에 실린 예언적인 글을 인용한 것이다.

이 글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은 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일부 세력들이 그의 대통령 당선을 극적으로 미화하기 위해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략 눈치를 챘겠지만 존경받는 대통령은 김대중, 불쌍한 대통령은 노무현, 쫓겨나는 대통령은 박근혜로 대입을 하고 나면 성군이 될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주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고래(古來)로 나라가 어지러워질수록 이러한 참언(讖言)이 판을 쳤다. 대표적인 예가 임진란을 겪은 조선에 만연했던 ‘정도령’의 출현설이다. 이는 물론 도참서로 알려진 ‘정감록(鄭鑑錄)’을 근거로 해서 유포된 것이었다. 하지만 금세라도 나타나 핍박받는 민초들을 구원해줄 것만 같았던 정도령은 끝내 오지를 않았고, 사이비 정도령들만 곳곳에서 참언과 요설로 민초들을 현혹시키며 가뜩이나 주눅 든 삶을 더욱 피폐케 했다.

서민들의 삶이 곤궁하고 강퍅해질수록 점집이 잘된다는 말이 있다. 점집을 찾아서라도 풀리지 않는 자신의 운명을 해결해 보고 싶은 심정 때문이다. ‘운명철학관’이라는 그럴 듯한 간판을 내건 점집과 신내림을 받았다는 용한 무속인들의 당집은 이러한 마음이 약해 빠진 사람들로 알음알음 붐비기도 한다는데. 세상에나. 그렇게 용하다면 자신의 운명이나 바꿔볼 일이지. 고작 사술(邪術)로 남 등쳐먹는 일이나 다름없는 짓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나 다름없다.

이념갈등이 급속히 심화되고 공공연하게 상대방을 의심하는 세태로 내몰리다 보니 별별 ‘가짜뉴스’가 횡행한다. 후안무치도 도를 넘어섰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극도로 불확실한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성군 운운하는 참언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호, 통재라!

#1.

1997년 2월 입춘 무렵. 나는 서울 동대문운동장 인근 상가 2층에 있는 낡고 비좁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은 문 달린 내실에서 손님과 상담 중인지라 밖의 소파에 앉아 주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소파 앞 탁자 위에는 서너 권의 앨범이 있었는데 그냥 앉아있기도 뻘쭘해서 그 중 하나를 집어 들게 됐다.

그런데 아뿔싸! 앨범 속 사진들은 S그룹 L회장 장례식 때 장지(葬地)에서의 하관식(下棺式)을 하는 진행과정을 찍은 것들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풍수가로서의 위상을 증명해 보이려는 일종의 홍보용 앨범인 듯 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5척 단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은 손님을 보내고는 내가 있는 소파로 와 마치 구면인 것처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청오 지창룡.

당대 최고의 명풍수로 불리던 인물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상지(相地)한 것으로 유명하다. 명풍수이자 명관상이었던 그는 생전에 숱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대권(大權)에 관한 것들이다. 박정희의 5.16 성공을 알려주었다거나 전두환 노태우의 대권을 암시해줬다는 이야기가 그것으로 이는 호사가들에게 과장된 측면도 없지는 않다.

또 자유당 정권 말기 시행된 청계천 복개공사와 관련해서는 ‘이 공사는 세 명의 대통령의 운명과 함께 할 것’이라 했다는데. 청계천 복개공사의 최종구간인 성수동 배수구 공사가 완공된 것이 10.26이 나던 1979년이었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를 실제 모델로 한 ‘소설 풍수’에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내가 그를 찾아간 것은 취재차였는데 당시 ‘통일’을 주제로 한 기획기사를 맡게 되면서 동분서주 하다가 역술인의 입장도 반영해보자는 의도에서 그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억으로는 그에게서 내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명쾌한 답변은 듣지 못한 것 같다.

최근에 그를 취재한 자료를 사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좀처럼 찾지를 못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 나의 취재 습관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 기억력이 떨어졌거나 부탁받은 상대가 나의 취지를 이해 못하고 자료를 간과했거나 일진데 내 생각으로는 후자 쪽에 가깝다고 본다. 이는 나의 입사 동기로 당시 같은 부서에서 일을 했던 Y에게서 자기도 분명 청오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는 증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로 돌아가, 나 또한 풍수와 관상에 관심이 가지만 이를 크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편한 말로 맞으면 좋고 틀리면 참고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운명은 자신 스스로가 개척하며 사는 것이지 참언 따위에 기댄다는 것은 어리석은 믿음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청오를 만나고 나서 더욱 확고해진 것 같다. 그것은 그에게 들은 나의 운명(?)이 빗나간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청오와 작별을 하면서 슬쩍 나를 묻게 되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청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세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하고 묻고는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 좋아요. 그 때가 되면 남들에게 베풀고 살게 될 것이요.”

그러나 살아보니 청오의 예언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으니. 청오의 말에 내심 남들에게 배풀면서 좋은 일을 하며 살아보겠다는 나의 꿈도 어느새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오, 나의 어리석음이여!

#2.

우리나라 풍수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도선국사는 고려의 국도(國都)를 송악(松岳, 개성)으로, 무학대사는 조선의 국도를 북악(北岳, 서울)으로 잡았다. 도선은 왕건의 탄생과 고려 건국을, 그리고 무학은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예견했다.

오늘날 남아있는 나말여초(羅末麗初)시기에 창건한 사찰 대부분이 도선과 연관돼 있을 정도로 풍수와 도선의 이야기는 거의 전설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도선이 왕융을 만나 왕건의 탄생을 알려준 것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왕건의 탄생은 물론 그가 장차 왕이 될 거라는 예언까지. 고려의 개국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도선은 도읍을 개성으로 봤다.

만월형의 길지인 개성은 북으로 송악·천마(天摩)·성거(聖居) 등 산악의 천험(天驗)이 있고, 좌우로 임진(臨津)·예성(禮成)의 두 강이 흐르며, 강화·교동의 섬들이 앞바다에 방파제처럼 널려 있어 육해의 형승(形勝)이 국도(國都)로서 손색없는 명당이라고 했다. 또 송악명당은 마두명당(馬頭明堂)·부소명당(扶蘇明堂)이라 부르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도선이 송악을 고려의 도읍으로 정하면서 800년을 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북악을 보고는 이곳에도 이씨(李氏)의 왕기(王氣)가 서려있음을 눈치채고는 자신의 예측을 절반인 400년으로 고쳐 잡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선은 400년을 앞서 조선의 개국까지도 내다본 것이었다.

이러한 도선의 신통한 이야기는 무학의 왕십리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무학이 이성계의 부탁으로 도성 자리를 물색하러 다녔으나 도무지 마땅한 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답답한 무학이 왕십리에서 쉬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소를 몰고 지나가면서 하는 말, “이랴! 이놈의 소. 하는 짓이 꼭 미련맞은 무학을 닮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에 깜짝 놀란 무학이 노인에게로 가서는 “제가 무학인데 혹시 노인께서는 도성이 들어설 만한 곳을 아시는지요.”

이에 노인은 손으로 동북쪽을 가리키며 “이리로 곧장 10리를 가면 되네”하며 이르고는 홀연히 소를 몰고 사라졌다. 노인의 말대로 동북쪽으로 10리를 가서 도성이 들어설 곳을 잡은 무학이 노인이 생각나 노인이 알려준 암자로 찾아가니 노인은 보이질 않고 도선의 화상만 걸려 있더라는 것이다.

비록 야사일지라도 도선의 풍수에 대한 신통력은 무학을 크게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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