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사태'로 정부와 국회, 체육회가 대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탁상 행정'에 나온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진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계주 시상식 장면.
'심석희 사태'로 정부와 국회, 체육회가 대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탁상 행정'에 나온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진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계주 시상식 장면.

[비즈월드] '심석희 사태'로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안을 제시했지만 '탁상 행정'으로 근본적인 해결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인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전 코치를 상습폭행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최근 성폭행을 범했다고 추가 고소했습니다. 심 선수가 만 17살인 2014년부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전까지 성폭행을 일삼았으며 한국체대 빙상장 지도자 라커룸, 태릉선수촌,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심 선수의 고소에 이어 지도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현직 빙상 선수들도 나왔습니다. 빙상 선수와 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젊은빙상인연대'는 빙상계 비위를 조사하다 심 선수 외에도 많은 성폭력 피해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중 두 명의 선수가 가해자를 공개하고 형사고발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듯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여전히 백지에 가깝습니다. 심 선수 사태로 정부와 국회, 체육회가 현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모두 탁상 행정에 그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내놓은 대안들은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 원인은 ▲상명하복의 선후배 문화 ▲지도 범위를 넘어선 코치 권한 ▲문제를 은폐하는 체육계의 폐쇄성 등입니다. 절대 권력을 행사는 지도자와 외부 시선에서 차단된 환경, 사고가 터져도 묵인·방조하는 스포츠계의 현실이 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스포츠계 전반의 수직적인 구조가 성폭력의 가장 큰 요인이며 그중 빙상계에서는 특정인의 권력이 커 공론화가 힘들었습니다.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빙상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에서 권력 주변에 있는 가해자들을 상대로 피해 선수나 학부모가 맞서기는 어려운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스포츠계가 성폭력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처벌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입니다. 영구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성폭력 범위를 확대하는 등 처벌 수위는 높였지만 폐쇄적인 스포츠계를 고려하면 이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뒷북 행정'도 문제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 주기로 대한체육회를 통해 아마추어 종목의 성폭력 등 폭력 실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체부는 이번 심 선수 사건을 방송 보도를 보고서야 인지했습니다. 이에 앞서 대한체육회가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이 사건을 파악하지 못해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문체부는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계획을 공개했지만 여전히 이 예산을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실시할 성폭력 등 체육단체 비위 근절을 위한 전수조사 역시 지난해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추진해야 할 정책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도 뒷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10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습니다. 일명 '운동선수보호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은 체육 지도자의 폭행으로부터 운동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 역시 이제야 수습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체육회는 10일 이기흥 체육회장 명의의 사과문과 함께 체육계 비위근절 전수조사,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개선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사고에도 움직이지 않던 체육회의 반성없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부와 국회, 체육회는 이미 그동안의 제도와 대책이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쏟아낸 대안들 역시 스포츠계의 성폭력을 막기에는 현저히 부족합니다.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부와 국회, 체육회를 뺀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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