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사이트 CEO 론 네서시안. 사진=비즈월드 DB
키사이트 CEO 론 네서시안. 사진=비즈월드 DB

[비즈월드] 키사이트(Keysight Technologies)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휴렛팩커드(HP)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휴렛팩커드는 알려진 대로 실리콘밸리의 1호 벤처기업으로 스탠포드가 소유한 부동산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1939년에 설립됐습니다.

휴렛팩커드는 지금 컴퓨터 및 주변기기 등을 제조 판매하는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설립 당시에는 계측장비 전문 기업이었습니다. 휴렛팩커드는 계측기가 가져야 할 전제조건인 고도의 정밀도와 견고함을 바탕으로 남다른 명성을 쌓았습니다. 계측기 기술이 밑거름이 되어 컴퓨터와 주변기기 등으로 사업영역과 시장을 넓혀갔습니다. 한국의 경우 유닉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지난 1990년대 컴퓨터 시스템 매출이 잠시간이지만 전통의 공룡기업 IBM을 앞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휴렛팩커드는 1999년 계측기사업부와 화학분석사업, 메디컬사업을 애질런트(Agilent Technologies)로 분사하게 됩니다. 키사이트는 애질런트가 분사한 5년 후인 2014년 다시 애질런트로부터 계측기 사업부문만 분리해 설립됐습니다. 휴렛팩커드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분사해 탄생했던 것입니다.

키사이트는 분사 후 설립된 지 4년밖에 되지 않아 인지도는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측기의 원조이자 시장 최대 점유기업이었던 휴렛팩커드가 뿌리였기 때문에 시장 장악력은 여전합니다.

우리나라의 공과대학 연구실을 찾아보면 거의 모든 곳에서 휴렛팩커드의 계측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들 계측기의 상표가 키사이트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오실로스코프, 멀티미터, 신호발생기, 스팩트럼 분석기, 신호발생기 등 계측 분야의 핵심 장비는 모두 생산하고 있습니다.

통신장비 부문에서 시스코가 스위치나 라우터 등 네트워크 장비에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면, 키사이트는 신호를 측정하는 계측장비 쪽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공룡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곳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KT가 운영하는 계측장비 중에 지하에 매설된 광케이블이 절단되거나 압력에 의해 꺾어져 데이터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네트워크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키사이트의 장비를 사용하게 되면 절단 지점을 정확히 찾아냅니다. 케이블에 장비를 연결하고 신호를 보내면 신호가 전송되다가 막히면서 미약한 반송파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반송파를 잡아내 시간과 속도를 계산함으로써 반경 1m 이내의 정확도로 사고 지점을 찾아냅니다. 고도의 기술개발이 따라 주어야만 가능했을 것입니다.

키사이트의 기술부문별 특허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의 기술부문별 특허 현황. 표=위즈도메인 제공

특허 분석 전문 위즈도메인의 분석에 따르면 키사이트가 보유한 특허 기술은 총 1388건입니다. 건수로는 그리 많지 않으나 특허 하나 하나가 모두 측정장비의 핵심 기능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됩니다. 키사이트는 지금도 매출의 13% 내외를 R&D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키사이트가 보유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면 여느 글로벌 기업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데이터 처리 분야의 비즁이 20%로 가장 많습니다. 디지털 정보전송 분야도 17%입니다. 이 때문에 같은 경쟁 기업으로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들이 꼽히고 이들 때문에 특허기술 경쟁력 순위 면에서는 21위 수준을 보입니다.

키사이트의 주요 기술부문의 양적, 질적 수준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의 주요 기술부문의 양적, 질적 수준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그러나 키사이트의 차별화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특허 포트폴리오에서 전기량 측정이라는 분야가 14.5%를 차지하고 통신신호전송이 10%입니다. 기타 다중통신과 복호화 관련 특허들이 9.5%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들 특허가 키사이트 특허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다른 기업과의 차이는 키사이트의 특허 워드 클라우드 분포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키사이트 특허 워드 클라우드.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 특허 워드 클라우드.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의 특허 워드 클라우드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프리퀀시입니다. 프리퀀시는 주로 주파수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전파의 파형이나 강약 등을 표시해 줍니다.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할 때 주파수의 파형 등을 파악해야 정확한 인코딩이 가능해집니다. 계측기의 상당수가 프리퀀시를 활용하기 때문에 키사이트의 특허 역시 이 부문에 강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전송되는 신호를 받아 테스트할 때 패킷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아 패킷과 네트워크라는 단어도 빈번합니다. 안테나 빔, 전류와 전압 등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전파의 세기에서는 뺄 수 없는 측정 단위이기도 합니다.

클라우드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단어들이 계측기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논의되고 활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ICT 기업들과 차별화된 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키사이트가 출원한 특허 동향과 동종 분야 30개 기업평균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지난 10년 동안 키사이트가 출원한 특허 동향과 동종 분야 30개 기업평균 비교.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의 특허 출원 동향을 보면 출범 시점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4년 출범 전까지는 특허 출원이 매년 5~17건(2008~2012년)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회사 출범 전해인 2013년에 특허 출원이 46건으로 갑자기 늘어납니다. 그 뒤 2016년까지 매년 50건 내외의 특허 출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출원된 특허의 등록 추세도 유사합니다. 2013년까지는 회사 출범 전이었기 때문에 키사이트 회사명으로의 등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10월 설립하자 마자 두달동안 11건이 등록되었고 그 뒤 ▲2015년 30건 ▲2016년 44건 ▲2017년 62건 ▲2018년 현재 73건 등으로 나타납니다. 지적재산권의 확보가 매우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키사이트의 최근 5년 동안 특허 매입 동향.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의 최근 5년 동안 특허 매입 동향. 표=위즈도메인 제공

회사가 출범하던 해 키사이트는 780건에 달하는 특허를 매입합니다. 이는 애질런트로부터 독립하면서 애질런트가 보유했던 계측장비 관련 지적재산권을 대거 인수한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 뒤 2017년에 다시 364건의 특허를 확보하게 됩니다. 2년 전 6000억원 이상을 들여 M&A한 회사의 특허가 이 시점에 키사이트로 완전히 이전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키사이트의 국가별 특허 출원 동향.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의 국가별 특허 출원 동향. 표=위즈도메인 제공

계측장비 시장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키사이트 역시 이를 의식해 글로벌 시장을 방어 또는 확장하기 위해 해외 특허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시장이자 지적재산권 방어가 어려운 중국 시장에 91건의 특허를 출원해 외국으로서는 가장 많은 출원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뒤를 이어 유럽 89건, 일본 62건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에도 17건을 출원했습니다. 삼성전자와의 경쟁, 내수에 치중하고 있지만 덩치가 큰 통신사업자 및 IT시장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키사이트와 특허 포트폴리오가 유사한 상위 30개 기업리스트.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와 특허 포트폴리오가 유사한 상위 30개 기업리스트. 표=위즈도메인 제공

키사이트는 계측장비 위주의 사업이기 때문에 회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견 그룹 정도의 매출입니다. 그러나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계측장비 한 우물만 파고 있다는 점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가치평가와 찬사를 받아 마땅한 기업입니다. 이 정도의 매출 규모로 포츈이 선정한 100대 기업에서 78위를 차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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