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덕의 南道春風] 17(중)-노란 꽃물결 따라 ‘황룡강 르네상스’를 꿈꾸는 남도의 관문. ‘문불여(文不如)’를 넘어 ‘옐로우시티(Yellow City) 장성으로…
[이해덕의 南道春風] 17(중)-노란 꽃물결 따라 ‘황룡강 르네상스’를 꿈꾸는 남도의 관문. ‘문불여(文不如)’를 넘어 ‘옐로우시티(Yellow City) 장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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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덕의 南道春風' 글쓴이 이해덕 명예기자. 사진=본인 제공
'이해덕의 南道春風' 글쓴이 이해덕 명예기자. 사진=본인 제공

[비즈월드] 1590년 건립된 황룡면 필암리의 필암서원(사적 제 242호)은 평지에 세워진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전형으로,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1527~1572)과 더불어 호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배향한 곳이다. 말하자면 ‘문불여장성’이란 말은 이곳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2월 필암서원과 무성서원을 비롯한 전국 9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

김인후는 장성 대맥동(황룡면 맥호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진부한 까닭에 생략한다.) 10세 때 전라관찰사로 내려 온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을 찾아가 ‘소학(小學)’을 배웠다. 모재는 하서의 인물됨을 알아보고는 ‘나의 소우(少友)’라면서 아꼈다.

17세 때는 담양의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에게 수학했으며, 이듬해 기묘사화를 만나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3~1536)를 찾아가 학문을 강론했다. 또 나주 목사로 좌천됐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 광주 서창에 돌아와 있던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을 사사, 학문의 폭을 넓혀 나갔다.

호남의 유학자로는 유일하게 문묘(文廟)에 배향된 하서. 그가 호남에 드리운 그늘은 그 만큼 짙고도 넓다. 장성 뿐만이 아니라 순창, 고창, 정읍, 담양, 광주, 화순, 나주 등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하서는 울산(蔚山) 김씨다.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인 김덕지(金德摯)의 후손이다. 그의 5대조인 조선 개국공신 학천(鶴川) 김온(金穩, 1348~1413)이, 태종의 왕권강화 일환으로 외척 세력을 제거할 때. 처가인 여흥민씨 민무구 형제 옥사(獄事)에 연루돼 화를 입자. 정부인 여흥민씨(1350~1421)가 달근, 달원, 달지 등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장성 대맥동으로 낙향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하서는 둘째인 달원의 4대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울산김씨 중시조인 김온의 부인 여흥민씨다. 아호가 하소부인(荷沼夫人)인 그녀는 풍수지리에 밝았다. 자신의 묏자리도 자신이 직접 잡았다. ‘복부혈(覆釜穴)’ 명당이었다. 북이면 달성리 산37.

“내가 이 터에 묻히면 말을 탄 자손이 앞 들판에 가득할 것이며 현인이 나면 필시 필암은 서원이 될 것이다.”

하소부인은 무학대사의 제자로 알려지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풍수. ‘하소결(荷沼訣)’이라는 풍수서를 남겼다. 하소부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하서는 물론이려니와 2대 부통령인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1891~1955),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1888~1964), 삼양그룹 창업자 김연수(金秊洙, 1896~1979), 국무총리 김상협(金相浹, 1920~1995),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녹영(金祿永, 1924,1985) 등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3년 전 봄. 나는 영산강 발원지를 찾아 담양 용추산 가마골 계곡을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놀랍게도 ‘사령관 동굴’이라는 빨치산 사령관의 은신처였던 동굴이 입간판으로 친절하게 안내되고 있음을 보았다.

엄중한 반공 이데올로기 시대에는 필시 금기시 됐을 인물을 이제는 버젓이 역사적인 인물로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그의 이름은 김병억(金炳億). 장성 북하면 중평리 출신 빨치산 남부군 노령지구 사령관이다.

중평리에는 중시조인 김온의 부조묘(不祧廟)가 있었다. 부조묘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을 영구히 제사지내도록 한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사당이다. 이곳에는 하서의 부조묘도 있는데 김온의 부조묘는 1964년 북이면 신평리로 옮겨갔다. 이것으로 볼 때 김병억은 울산김씨의 직계 후손으로 한 때는 굉장히 촉망받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소설 ‘남부군’의 주요 무대가 됐던 순창 회문산과 함께 하나의 해방구를 건설하며 굴절된 역사의 수레바퀴에 스러져간 그들이지만, 지금은 역사 체험관이라는 전향적인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중평리가 북하면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나 지금의 면소재지는 약수리에 있다. 이 곳 약수리에 백제의 천년 고찰인 백양사가 있다.

백양사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조계종 초대 종정이었던 만암(曼庵, 1875~1957)과 그의 제자인 서옹(西翁, 1912~2003, 재5대 종정) 큰스님이다. 먼저 중이 되라고 가르쳤던 만암은 선과 교학에 두루 능통했다. 그의 선 수행은 용맹정진 보다는 일상의 선농일치(禪農一致),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한결같이 실천했고. ‘이 뭣고?’라는 화두(話頭)를 붙잡고 참구(參究)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근본적인 출발을 의심하는 ‘이 뭣고?’는 백양사 사천왕문 앞에 있는 ‘만암대종사고불총림도량(曼庵大宗師古佛叢林道場)’이라는 돌탑 하단부에 새겨져 있다.

전북 고창에서 어머니가 도인에게서 흰양을 건네 받아 품에 안는 태몽을 꾸고 태어난 만암은 그 인연때문인지 백양사로 출가, 절을 크게 중창하는 한편 교육에도 힘쓴다.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네.”

청빈한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만암은 서옹을 비롯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좌탈입망(坐脫立亡)했다.

서옹 큰스님은 비교적 대중에게 익숙한 편이다. 천진무구한 미소가 인상적인 서옹 스님을 대중은 천진불(天眞佛)이라 불렀다. 서옹은 ‘참사람 운동’으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권했다. 양정고보를 졸업한 서옹은 만암을 은사로 백양사에서 출가, 당대의 선지식이던 한암(漢岩) 문하에서 참선 수행을 했다.

“만암 스님은 말씀을 하면 꼭 실천을 했어. 작은 일도 절대 소홀히 여기지 않았지. 한암 스님은 모든 생활이 말 그대로 여법(如法) 하셨어.”

세상에 살면서 밥값은 해야 한다며 어린이 한문학당, 무문관, 참사람의 향기 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물질문명의 위기에 처한 중생들을 위한 제도에 진력했던 서옹은 스승인 만암과 마찬가지로 좌탈입망함으로써 열반에 들었다.

요즘에 장성은 온통 노란 물결이다. 이는 장성군이 추구하는 것. 바로 ‘옐로우시티(Yellow City)’ 때문이다. 장성군은 군을 관통하는 황룡강을 모티브로 한 ‘옐로우시티’를 꿈꾸고 있다. 사계절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럼 왜 노란색일까? 이는 물론 황룡강에서 비롯 됐다. ‘옐로우’라는 단어는 다분히 왜곡돼 선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색이 노란 색일 만큼 최상의 색이요. 전통의 오방색(五方色)인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가운데 중심색이기도 하다. 또 노란색은 금색으로 부를 불러오는 색이다. 장성군은 이에 오는 2020년까지 ‘옐로우시티’를 ‘황룡강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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