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해덕 제공
사진=이해덕 명예기자 제공

[비즈월드]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장미공원을 가다>

심수봉이라는 가수가 있다.

청춘의 시절. 홀연히 ‘그 때 그 사람’을 들고 나타난 그녀는 페이소스 짙은 특유의 음색으로 연인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홀리듯 몰입하게 만드는 전주와 함께 노래의 첫 소절이 나가면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 듯 가볍게 탄식을 토해내곤 했다. 음악다방의 DJ는 빗발치는 신청에 아예 계속해 판을 걸기 일쑤였다. 당연히 ‘그 때 그 사람’에 대한 소문도 돌았다.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던’ 그 사람은 바로 가수 N이라는 것이었다. 마초와 같던 N이 노래 속 그 사람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1979년을 홀렸던 이 노래로 인해 심수봉은 ‘10.26’의 여인이라는 엄청난 굴레를 쓰게 된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결코 범상치 않은 인생 때문일까. 훌쩍 중년의 나이에 심수봉은 예의, 한층 원숙해진 애조 띤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진실한 사랑은 뭔가?’

심수봉의 번안가요 ‘백만 송이 장미’는 그 ‘진실한 사랑’을 장미의 개화(開花)에 동기로 부여한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백만 송이 장미.

생각만으로도 그 얼마나 황홀한 프러포즈인가.

5월이면 생각나는 꽃. 그 꽃을 보러 나는 지금 곡성으로 간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는 늦츨 수가 없어 내친 김에 더 나아가기로 하고 곡성을 찾았다. 말을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오랫동안 승용차에 익숙해지다 보니 아직도 대중교통은 번거로운데가 있다. 더욱이 예전과 같은 왁자한 인정이 사라진 대중교통은 그저 최적화된 편리를 내세우는 ‘탈 것’의 제기능에만 충실한 모습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남 아우인 J와 P가 번갈아 운전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배려로 나름 편하게 남도를 여행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J가 여름 이후로 발길을 끊더니. P마저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 2월 초 광주 동행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다. 70년생 개띠 동갑내기인 이 둘은 친구로 지내온 사이다. 그러나 이 둘은 어떤 일을 계기로 견원지간이 되고 말았다. 듣기로는 지역에서 실내건축업을 하는 J에게 P가 제법 큰 마을사업을 소개했는데 여기서 사달이 났다. 공사를 맡긴 이장이 J의 일처리에 불만을 제기하며 공사대금 지급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이에 J가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강경하게 맞서자 중간에 있던 P의 입장이 난처해졌던 모양이다. 그 일로 이 둘은 내게 서로 번갈아가며 하소연을 하더니. 어찌된 일인지 또 그렇게 번갈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장차 해남의 재목이 될 만한 이 아우들이 부디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광주에서 곡성으로 가는 버스는 구례까지 간다. 곡성과 구례는 이렇게 쌍으로 불러줘야 제맛이다. 광천동 버스터미널인 유스퀘어를 출발한 버스는 문화동 직행버스정류소에 정차한 뒤 곧장 곡성으로 간다. 문흥IC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처 달려가니. 이내 곡성이다.

7년만에 다시 찾은 곡성은 기차마을을 내세워 환골탈태한 모양새다. 길가에 버스정류소를 기차모형으로 꾸몄을 정도로 ‘곡성=기차’의 이미지가 강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기차 안다니는 곳이 없을 정도인데. 곡성이 발빠르게 기차를 지역의 브랜드로 선점한 결과로 기차가 곡성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구(舊) 곡성역. 섬진강기차마을에 장미공원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미공원이다. 사랑의 상징인 ‘천사’와 음이 같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들여온 1004종의 장미를 40000㎡의 부지에 심었다. 37588그루. 이곳에 가면 5월부터 11월까지 계속해서 장미꽃을 감상할 수 있고. 매년 5월에는 세계장미축제가 열린다.

축제(18~27일)가 막 끝나서인지 번잡을 피해 여유롭게 장미를 완상할 수가 있었다. 다만 성급한 장미는 군데군데 시들어 5월과 함께 저물고 있다.

썸머 할리데이, 씽킹 오브 유, 마리 앙투아넷, 이브닝 스타, 로얄 보니카...

백장미, 붉은 장미, 노랑 장미, 분홍장미, 넝쿨장미...저마다의 이름표를 냐걸고는 있으나 그저 장미를 아파트 담장에 붉은 넝쿨장미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처지라 크게 상관할 바는 못되었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오직 하나. 백만 송이 장미를 느껴보고 싶다는 것!

알려진 대로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마라가 딸에게 준 삶’)은 1981년 라트비아의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 우승곡이다.

가사 내용은 ‘백만 송이 장미’와는 전혀 다르다. 노래는 당시 소련 치하에 있던 라트비아의 역사적 아픔과 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지모신(地母神)인 마라가 라트비아라는 딸을 낳고 정성껏 보살폈지만 가장 중요한 행복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그냥 떠나버렸기 때문에 성장한 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일과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라는) 끔찍한 운명이었다는 이야기.

알라 푸가쵸바가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려진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는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작사한 것으로,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여배우 마가렛과 사랑에 빠졌던 일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그러나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지붕도 팔아/ 그 돈으로 완전한 장미의 바다를 샀다네...’

곡성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이곳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심청축제를 연다. 곡성과 심청? 1997년 백령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 심청각을 보았고 인당수 이야기를 들었다. 인당수는 실제 백령도와 황해도 장산곶 사이에 있는데 물살이 거창가로 소문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다도 없는 곡성에 심청이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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